고용난민과 관련해 일본출장을 준비하면서 반빈곤네트워크 사무국장겸 내각부 참여(어드바이저)인 유아사 마코토도 취재대상에 넣었지만 기대하지 못했다. 워낙 늦게 연락을 했고 국내 전문가들도 "너무 바쁜 사람이라 어떨지 모르겠다"며 반신반의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는데 뜻밖에도 답신이 왔다.
"8월12일 가스미가세키의 내각부 사무실에서 만납시다"
유아사 마코토의 이력은 국내에도 소개돼 있긴 하지만 대체로 이렇다.
도쿄대를 다니던 시절부터 노숙자 지원활동 등을 벌여오다 박사과정을 중도에 그만두고 아예 반빈곤운동에 투신했다. 반빈곤네트워크 사무국장과 빈곤층 생활지원센터 모야이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를 다니던 시절부터 노숙자 지원활동 등을 벌여오다 박사과정을 중도에 그만두고 아예 반빈곤운동에 투신했다. 반빈곤네트워크 사무국장과 빈곤층 생활지원센터 모야이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서의동
그는 일본의 젊은 세대에서는 보기 드문 행동주의자이다. 그의 책 <반빈곤>(국내에선 <빈곤에 맞서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있다)을 보면 노동착취 문제를 이슈화하기 위해 노동자 일용파견업체에 위장취업하기도 했다. 일본에 빈곤은 없다던 자민당 정권에 맞서 빈곤대국화돼가는, 그러면서도 사회보장은 작동하지 않는 일본사회의 밑바닥 현실을 여론에 환기시켜왔다. 일본사회에 오랜 기간 위력을 떨쳐온 '빈곤은 자기책임'론이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다는 점을 설득시켜왔다. 자민당 정권이 50여년만에 붕괴되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데 그의 이런 노력도 뒷받침됐다. 그는 지금 일본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운동가에 속한다.
기성언론의 영향력이 한국에 비해 아직도 지대한 일본 사회에서 그는 매우 치밀하고 효과적으로 언론을 활용(좋은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12월말 도쿄 최중심부에 위치한 히비야 공원에서 해고된 파견노동자, 노숙자들과 함께 해맞이 파견촌(일본어로는 도시코시하켄무라)을 꾸린 일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12월말 도쿄 최중심부에 위치한 히비야 공원에서 해고된 파견노동자, 노숙자들과 함께 해맞이 파견촌(일본어로는 도시코시하켄무라)을 꾸린 일이다.
해맞이 파견촌 모습. 사진출처= http://www.dentu-rouso.or.jp/syutyou/090105/090105.html
일본의 연말연시는 타지에서 고향을 찾은 가족들이 모여앉아 TV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말연시라 특별한 사건도 없어 매스컴들은 '꺼리'에 목말라한다.
이런 상황에서 도쿄 중심부의 공원에서 해고노동자와 노숙자 500여명이 집단으로 파견촌을 세운다는 것은 연말연시 채울 뉴스가 없어 헤매던 매스컴들에게 엄청난 꺼리를 던져주는 셈이다. 특히 2008년에는 대기업들에 의한 파견노동자 집단해고가 큰 뉴스가 되기도 했던 터였다.
역시나 해를 넘겨 1월5일까지 이어진 파견촌 이벤트는 매스컴에 의해 거의 생중계되다시피 하면서 연말연시 TV앞에 앉은 일본 국민의 뇌리속에 크게 각인됐다.
그 덕에 히비야공원에는 노숙자와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위문품과 자원봉사자들이 대거 몰리기도 했다. 국회의원들도 대거 방문했다. (해를 넘겨 1월초에는 파견촌민들이 근처에 있는 국회의사당을 한바퀴 도는 시위를 벌였고, 이 때 국회의원들이 일렬로 서서 그들과 악수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 덕에 히비야공원에는 노숙자와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위문품과 자원봉사자들이 대거 몰리기도 했다. 국회의원들도 대거 방문했다. (해를 넘겨 1월초에는 파견촌민들이 근처에 있는 국회의사당을 한바퀴 도는 시위를 벌였고, 이 때 국회의원들이 일렬로 서서 그들과 악수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8월12일 오후 일본의 관청가인 가스미가세키의 내각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1시간여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민주당 정권의 요청으로 내각부의 참여(어드바이저)가 되긴 했지만 칼라없는 라운드티에 샌들차림이었다.
잘 웃지도 않는 무표정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출장중에 사본 아사히 신문의 주간지 <아에라>에서는 아사히TV의 아나운서(이름은 까먹었다)와의 대담이 실렸는데 이 아나운서가 웃어보라고 하니 "웃기도 합니다"라며 어색한 웃음을 짓는 사진을 싣기도 했다.
잘 웃지도 않는 무표정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출장중에 사본 아사히 신문의 주간지 <아에라>에서는 아사히TV의 아나운서(이름은 까먹었다)와의 대담이 실렸는데 이 아나운서가 웃어보라고 하니 "웃기도 합니다"라며 어색한 웃음을 짓는 사진을 싣기도 했다.
신문에 실리지 않은 내용을 포함해 유아사와의 인터뷰를 옮겨본다. 그는 한국의 노동현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특히 한국의 비정규직보호법이 일본에 비해 상당히 선진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무실을 나서자 방송카메라와 기자가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파견규제법안은 어떻게 되고 있나.
"9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제출돼 계속심의 된다. 바로 통과될지는 잘모르겠다. 지금 여소야대 상태여서 어려울 수 있다. 내용적으로도 2년 이상 고용시 계속 고용해야 한다는 한국의 비정규직보호법에 비하면 약하다.
예를 들어 반년이상이면 직접고용으로 간주해야 하고 1년 이상이면 상용고용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다. 1년이 지나 1년 더 기간계약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노동자가 법률위반이라고 항의하면 직접 고용해야 하지만 1년이상의 유기계약이면 된다. 결국 회사로서는 시끄러운 노동자에 대해서는 1년간 유기계약으로 해버리면 된다.
법률에는 상용계약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번 법률에는 1년이상의 유기계약을 상용계약으로 간주하고 있어 1년 정도만 고용이 보장되는 셈이다. 또 노동조합이 파견노동자가 근무하는 기업과 단체교섭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3당합의에 의해 규정됐으나 없어져버렸다. 그래서 한국의 비정규직보호법보다는 보호수준이 약하지만 이것조차 아직 통과 안된 상태다.
일본은 3분의1이 비정규직이고 파견노동자는 최고 380만명까지 달했지만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
-일본 게이단렌 사람을 만났더니 직접고용의제 조항이 문제지만 어쨌건 법안이 통과되면 그에 따르겠다고 한다. 생각보다 전향적인 느낌이다.
"대기업들은 파견법이 법제화가 안됐어도 이미 고용관계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파견노동에서 기간(유기)노동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로써 급료가 오른 사람도 있지만 깎인 사람도 있다. 반면 기업들중 일부가 해외에 설비투자를 옮기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파견법안의 법제화에는 여론의 힘이 컸던 것인가
"역시 파견자르기(하켄기리)가 노골적이었다. 원래 파견이라 하더라도 3개월, 6개월 갱신 등의 절차가 필요한데 당시 기업들은 1개월반이나 2개월만에 파견노동자를 중도해약하기도 했다. 과반수 가량 됐다. 그에 따라 직장을 잃고 회사기숙사에서마저 쫓겨나 홈리스가 되는 사례가 빈발하면서 파견촌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이후 기업들이 이미지 악화를 우려해 고용형태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파견노동 문제는 해결돼 간다는 뜻인가.
"그런데 파견노동의 절반은 유기계약이다. 일본의 유기계약 규제는 매우 약하다. 노동기준법에 따르면 유기계약의 최장은 3년으로 규정돼 있다.
유럽의 경우 유기계약을 할 수 있는 업종은 계절노동(여름의 아이스크림, 스키장)에 국한돼 있다. 유기계약 도입제한 규정은 없다. 파견노동으로 사회문제화됐지만 실질적으론 유기계약 노동의 문제이기도 하다. 후생노동성에서 유기계약의 연구회가 만들어져 중간보고는 이뤄진 상태다. 이 문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도 주목해야 할 포인트다.
파견규제와 별도의 법률을 만들 필요가 있다. 유기계약 노동은 사회안전망과 결부시켜줘야 한다. 6개월 계약일 경우 6개월이후 실직하면 고용보험을 못받는다. 기업에도 유기계약 종료후 노동자로 하여금 다른 근무처를 소개하는 의무 등이 부과돼야 한다. 특히 6개월 계약의 상태로 10년간 반복되는 식의 고용형태는 정리돼야 한다."
-기업들은 고용형태의 다양화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경단련이 모든 심의회에 사람을 집어넣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총리 관저에서 직접 이야기하거나 하는 방식은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뒤 없어졌다. 고용전략회의라는 형태에 일본 경단련과 렌고, 정부가 한 테이블에서 논의하고 있다."
-소비세 문제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인식은 어떤 수준인가.
"소비세는 인상해야 한다고 물어보면 “이제는 그렇다”고 절반정도가 답변한다. 일반 시민들에게 저부담-저복지, 고부담-고복지 어느쪽이 좋냐고 물으면 고부담쪽을 선호하고 있지만, 정부가 고복지를 해줄 것이라고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강하기 때문이다. 내 돈을 내면 관료, 정치가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을까라는 불신감. 상당한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불신은 실제보다는 과장됐다고 판단한다. 어쨌건 행정불신감은 크다."
-일본의 복지지출 비중이 여타 선진국보다 낮다.
"일본의 사회보장은 의료와 연금정도이고, 기업, 가족복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기업복지가 약화되고 있고 고령화도 진행되고 있다. 기업복지와 가족복지에만 의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지만 그렇다고 사회보장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의식이 그리 간단히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에 대해 긍정적인 경험을 한 이들이 많지 않은 것도 이유일 것이다. 결국 가족들이 감당하는게 현실이다."
-정부나 현 차원의 긴급고용대책은 계속되나.
"계속 유지할지 그만둘지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 리먼 쇼크 이후 꽤 큰 규모로 진행됐지만, 차와 가전제품에 대한 보조금은 가을에 종료된다. 실업자에 대한 지원, 사회기업 육성 등이 있지만 이런 것들이 내년에 어떻게 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3년간 지원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내년까지는 지원된다. 내년 국회에서 어떻게 될지 결정한다."
-지역노조 만났을 때 2008년에 비해 열기는 가라안잤지만 뿌리내리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떤가.
"노동조합이 생활지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그전까지는 노동쟁의에만 열중했으나 파견촌 문제를 계기로 생활지원안하면 노동쟁의도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OECD기준으로 일본 빈곤률을 처음으로 발표했는데 15.7%에 달했다. 이 만큼 빈곤이 확산되고, 그에 대응해 생활지원 단체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신자유주의 좌절, 정권교체 등 일본사회가 수십년만에 맞는 대변동기에 놓인 것은 사실이다. 지금부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많은 사람들이 걱정 속에 지켜보고 있다."
-한국은 정부가 파견근로를 확대하고 고용서비스의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도 하로와크(공공직업소개소)의 민영화가 문제가 된 바 있다. 최근 10년 하로와크 민영화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지만 아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만약 하로와크의 민영화가 될 경우 취업에 핸드캡이 있거나 하는 사람들의 취직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영국의 경우 민간위탁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국한한다."
-굿윌은 왜 망했나.
"굿윌은 대형 일용노동회사였다. 일용파견은 경비, 토목, 항만 등 4곳에서만 금지되고 모든 곳에서 허용돼 있다. 하지만 일용파견이란게 파견노동의 나쁜 점들이 집약돼 있는 형태인데 그런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일감이 떨어졌다. 나중에는 매일 200엔씩 노동자의 임금을 가로챘던 게 발각되기도 하면서 결국 망했다. 풀캐스트도 요즘은 일용파견은 하지 않는다. 일용파견은 이미 일본사회에서 거의 사라졌다."
국내에서는 <빈곤에 맞서다>로 출간된 그의 책 <반빈곤>
-<반빈곤>의 서두에 등장했던 닛타부부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부인의 상태 특히 정신장애가 심해졌다. 남편이 일나가면 집에 혼자남아 있어야 하는데 상태가 나빠졌다. 그녀를 돌보기 위해 남편도 역시 밖에 나가 일하기 힘들어졌다. 역시 빈곤을 방치하면 사회적으로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점을 이런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 진작에 도왔다면 지금쯤 둘이 문제없이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네트카페 난민은 늘었나 줄었나.
"더 늘어난 것 같다. 파견노동자들도 문제지만 최근 들어 정규직도 평균임금이 낮아지면서 아파트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이들이 꽤 늘어났다. 저임금 노동이 늘어난 것인데 일은 있지만 아파트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빈곤층들이 전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소로(식객)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내각부 어드바이저는 언제까지 할 건가.
"기간은 없다. 정책적인 과제가 있어서 언제 그만둘지는 결정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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