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친서민-민영화된 포퓰리즘

서의동 2010. 10. 7. 18:30
 
내년 예산안이 제출되면서 이명박 정부가 입에 달고 사는 ‘친서민’의 배경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생겼다. 
 출발점은 공교롭게도 감세정책이다. 정부는 출범 첫해 대규모 감세정책을 내놓았다. 법인세와 소득세를 낮추고, 종합부동산세의 징수 범위를 확 줄였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자 재정지출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정부가 계획 중인 감세 규모는 임기 5년 동안 60조원이 넘는다. 여기에 4대강 예산으로 매년 5조원가량이 빠져나간다.

 살림살이가 나빠지면서 서민·복지예산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자 이명박 정부는 ‘서민정책의 아웃소싱’을 시도한다. 금융권과 일부 대기업들의 팔목을 비틀어 재원을 조달한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1호 상품이 미소금융이고, 2호가 ‘햇살론’이다. 금융권 안팎에선 대출 부실 우려가 제기됐지만 ‘관치’의 매운맛을 본 금융회사들은 끽소리 못한다.

 정부는 내년에 복지예산 증가율을 낮췄다. 복지부문 예산은, 정부 설명에 따르면 금액상으로 최대다. 하지만 증가율은 6.2%로 2006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더구나 국내총생산(GDP) 명목성장률(7.6%)에도 밑돌면서 GDP대비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줄어들게 된다. 우리 복지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으로 ‘걸음마’ 단계임을 감안하면 심각한 퇴행이다. 복지 지출 중에서도 공적연금 부문과 주택구입자금 융자 등 주택 부문을 제외하면 증가율은 3.9%로 줄어든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2만7000명이 축소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서민 희망’ 예산이라고 호도하고, 보수진영은 ‘포퓰리즘이 우려되는 최대 규모의 복지예산’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뒤가 켕겼던지 이번에는 여당이 나서 또 한번 만만한 금융권의 팔목을 비튼다. 은행들의 영업이익 10%를 재원으로 한 ‘새희망홀씨 대출’을 ‘3호 친서민 상품’으로 내놨다. 재정이 필요한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라고 몰아세우면서 은행들 돈으로는 부실이 우려되는 서민대출 상품을 만들어 잔뜩 생색을 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은 ‘민영화된 포퓰리즘’이다.

 이런 친서민 정책의 부작용이 제대로 검토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상환능력이 부족한 저소득층에게 빚을 권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급전이 필요한 저소득층도 있다. 하지만 정말 저소득층을 도우려면 돈을 빌려주기보다는 재산 형성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소득층이 빚의 악순환에서 탈출하도록 저축이나 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정책들이 더 절실하다. 정부 정책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진정한 친서민 정책을 하려면 정권 초기에 벌였던 감세정책을 폐기하고 4대강 사업을 접는 것이 우선이다. 감세로 투자가 늘어나 성장한다는 논리가 맞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다. 야당이 지난 4일 국정감사에서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자고 하자, 정부는 “감세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더라도 그냥 밀고 나가는 게 정책 일관성인지 묻고 싶다.

 다음 정권에서 대출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경제에 부담을 주건 말건 기분내고 보는 ‘친서민 아웃소싱’ 대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정직하게 예산을 짜면 된다. 그것이 진짜 친서민이고 공정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