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가 야구배트를 들게 된 사연

서의동 2010. 12. 1. 23:50
국내 유명 재벌의 2세는 유학생 시절 친구들과 서울 강남에서 승용차를 타고 가다 옆 차선의 프라이드 승용차 운전자와 동승자를 끌어내 벽돌과 화분으로 집단구타해 중태에 빠뜨렸다.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벽돌에 머리가 찍힌 동승자는 뇌수술을 받았다. 현장에서 달아난 이 재벌 2세는 몰래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붙잡혔다.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그는 6년 뒤에도 서울 강남에서 술에 취해 승용차를 몰다가 단속하려는 경찰을 창문에 매달고 질주해 전치 석달의 중상을 입혔다. 이어 지나가던 차량 3대를 들이받은 뒤 차를 버리고 골목으로 달아나다 시민들에게 붙잡혔다. 한 편의 액션영화다.

또 다른 재벌 2세는 수년 전 동업자를 산으로 끌고가 집단폭행하고 물고문까지 했다. 그는 특수 폐쇄회로(CC)TV를 공동개발하기로 한 박모씨에게 돈을 투자했으나 진척되지 않자 직원들을 동원해 박씨를 경기도의 펜션으로 끌고 갔다. 그는 박씨의 손발을 묶은 뒤 마구 때리고 물을 담은 양동이에 박씨의 머리를 넣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건 조폭영화다. 

영화 영웅본색(출처 다음) 사실 주윤발은 기부천사인데...



재벌 2세 최철원씨가 일으킨 ‘매값 사건’에 분개하는 이들이 많지만 재벌 2세들의 활극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한국의 재벌 2세 전부가 이렇게 안하무인이라고 믿고 싶지 않지만 그들의 추태는 서민들을 섬뜩하게 만든다. 재벌 2세들은 금융시장도 종종 어지럽힌다. 이들이 낀 주가조작 사건들로 개인투자자들의 생때같은 돈들이 허공으로 사라지지만 사법당국의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그들의 행위는 충분히 분노를 살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재벌 2세들의 추태가 통할 정도로 한국 사회가 급속히 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계급은 우리 사회에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자가 급증하고 기업형 슈퍼마켓(SSM) 때문에 동네슈퍼들이 문을 닫는 일이 반복되면서 ‘열심히 하면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은 사라졌다. 올라가려 해도 사다리가 없는 사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사업 기회를 빼앗는 재벌들을 수수방관하는 정부하에서 서민들은 꿈을 잃었다. 

사회가 호락호락해지자 재벌들의 의식 수준은 봉건시대로 돌아갔다. 국내 재벌들에게 프로테스탄트적인 ‘청부(淸富)’ 윤리는 애초부터 없었지만 ‘깨끗하게 벌진 못했어도 정승같이 쓰겠다’는 의식도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는 재벌 2세들 역시 드물다.

최씨는 유모씨를 야구 방망이로 구타한 뒤 현장에 있던 60대 경비원을 가리키며 “나이 먹은 사람도 돈 벌어서 살려고 꼬박꼬박 출근하는데, 젊은 놈이 돈 뜯어먹으려고 한다”며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최씨에게는 자기보다 11살 연상인 유씨가 ‘천민’쯤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신분이 다른데 11살 많은 정도가 무슨 대수일까. 수조원대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됐던 재벌총수가 사면받은 뒤 “우리 국민이 정직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도 그냥 꾹 참아야 한다. 그는 황제니까. 

서민들에겐 추상 같은 사법당국도 재벌들의 범죄에는 관대하다. 미국에서라면 회사 파산은 물론 최고경영자가 수십년씩 실형을 받을 회계부정이나 비자금 사건은 집행유예로 마무리된다. 사법당국이 최씨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주변에 물어보면 ‘봐주기 수사에 솜방망이 처벌로 끝날 거다’란 대답이 돌아온다. 그간의 학습효과다. 한국 사회는 딱 이런 수준이다. 최씨가 야구 방망이를 집어든 데는 다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