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쓴 글

룰라 리더십의 비결

서의동 2010. 12. 28. 22:13
 “브라질 엘리트들이 결코 해내지 못한 것을 선반공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주겠다” 2002년 대통령 선거유세 기간 중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후보는 이렇게 다짐했다. 집권 8년간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 경제를 반석위에 올려놨고, 서민의 삶을 크게 개선시킴으로써 약속을 지켰다. 연말 퇴임하는 룰라에 대한 국내 지지도는 무려 87%에 달한다. 포용력과 진정성을 갖춘 ‘부드러운 좌파’ 룰라 대통령의 아름다운 퇴장에 세계가 찬사를 보내고 있다. 룰라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집권 8년을 조망해본다.

“저는 변신의 귀재입니다.” 1970년대 브라질의 가수 하울 세이삭스의 노래 중 한 소절인 이 말은 이달 말 퇴임하는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65)이 즐겨 쓰는 말이다.
때묻은 작업복과 헝클어진 턱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룰라는 대통령이 되면서 말쑥한 양복과 잘 다듬어진 턱수염의 신사로 변모했다. 하지만 노동자 집회에서 청중을 열광시키던 쇳소리의 음성과 틈날 때마다 경호원의 제지를 무릅쓰고 인파속으로 손을 내미는 기질은 변하지 않았다. 
 

퇴임을 앞두고 지지자들이 연 축하연에서 미소짓는 룰라/AP


 
‘대통령 룰라’의 성공은 이분법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데서 비롯됐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 노동자 계층과 부유층이 극단적으로 대립해온 브라질 사회의 특성상 룰라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정치실험이었다.
룰라는 2003년 1월 첫 각료회의에서 “사람들의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는 게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며칠 뒤 호세 비에가스 브라질 국방장관은 7억6000만 달러 어치의 전투기 도입 예산을 빈민사업에 전용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상파울루에서 넝마주이들과 만난 룰라/AP


 

13세 구두닦이로 시작, 44년 동안 노동현장과 노동자 정치의 일선에 섰던 ‘빨갱이 룰라’는 유연한 리더십의 지도자로 변모했다. 우선 특권층 과세 강화와 토지개혁 공약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민생정책은 일관되게 추진했다. 빈곤퇴치 프로그램 시행과 고용창출 노력, 최저임금 현실화로 서민층의 생활개선을 꾀했다. 선명 좌파진영에서 “룰라가 변혁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퍼부었지만, 정작 서민들이 아랑곳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브라질 북동부 가란훈스시의 목장노동자 루이스 실바는 지난 25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룰라 정부는 내 인생에서 최고의 정부”라며 “온 나라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룰라가 퇴임직전 가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AP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동자당(PT) 후보인 룰라의 지지도가 오르면 오를수록 브라질 경제사정은 악화됐다. 국제자본이 브라질을 이탈하면서 증시가 곤두박질쳤다. 이미 신자유주의 체제로 재편된 브라질 경제를 단시일내 바꾸기는 불가능한 측면이 있었다.
룰라는 외채상환과 긴축정책으로 국제 금융시장을 안심시키는 한편 수출을 통한 성장전략을 가동했다. 때마침 국제 원자재 수요가 증가하면서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이 힘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남미 다른 나라에 비해 원자재 수출 의존도는 높지 않았다.(김화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그보다는 서민 우선 정책으로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내수기반이 탄탄해진 것이 룰라 경제 성공의 비결로 꼽힌다.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과 주변 남미국가들로 교역선을 다변화한 것도 금융위기에서 빨리 헤어나올 수 있게했다. 

 

퇴임하는 룰라를 사진에 담으려는 브라질 시민들 모습/AP




이분법의 함정을 피해나간 룰라는 좌우구분없이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을 썼다. 2002년 대선 기간 중 섬유재벌 조제 알렝카르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하는가 하면, 집권 뒤에는 미국 보스턴은행의 임원 출신을 중앙은행 총재로 임명했다.
 
의회내 소수당 출신 대통령이면서도 집권 기간 내내 의회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룰라는 군소 좌파 정당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규모의 우파 정당 등 12개 정당과 정책연합을 구성했다. 2003년 정권출범 당시 PT는 상원 내 제3당, 하원 내 제1당이었지만 하원 내에서조차 의석점유율은 18%에 불과했다.
이런 사정은 룰라가 좌파적 정책들을 추진하기 어렵게 했지만 좌우 통합정치를 펼치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룰라는 의회 밖에서도 풀뿌리 조직과 교회, 업종별협회 등과 대화채널을 구축해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정책추진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확보했다. 

한쪽을 배제하는 ‘제로섬’ 방식의 개혁 칼날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콩, 사탕수수, 쇠고기 등을 수출하며 브라질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농축산 기업들을 배려해 핵심지지층인 무토지 농민운동(MST)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점진적 토지개혁정책을 채택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룰라는 “당신은 공산주의자냐, 사회주의자냐, 사민주의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금속노동자”라면서 “우리는 사회주의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 현실에 적합한 브라질 모델만 원할 뿐”이라고 답변한다. 

 

룰라가 브라질 정부의 주택정책으로 집을 갖게 돼 집 열쇠를 들어보이며 감격해하는 한 시민과 입을 맞추고 있다./AP



이성형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는
중남미 좌파들이 90년대를 거치면서 선명성을 강조하던 ‘에스프레소 좌파’에서 포용력 있는 ‘카푸치노 좌파’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최소한의 변화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고 싶어하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읽고(카톨릭대 조돈문 교수), 세계화된 경제환경을 감안한 정책선택이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었다는 평가도 있다.
 
외교에서도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의 틀에 갇히지 않았다. 미국과 관계를 허물지 않으면서도 브릭스(BRICs)를 비롯한 개도국과의 연대를 통해 브라질의 지위를 격상시켜 왔다. 

 


(사진위)리우데자네이루가 2016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직후 회견에서 룰라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신화 지지자들이 연 회견에서 룰라가 어린이를 무대위로 끌어올리고 있다./AP



룰라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차기 대통령에게 당부한 말은 그의 리더십의 원천을 읽는 키워드다.

“심장에서 우러나는 정치를 하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 최선을 다해 민주주의를 실천하라.” 
 

룰라가 후임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있다./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