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일본 신용도 추락이 ‘복지 퍼주기’ 탓?… ‘원죄’는 토건 올인·감세조치

서의동 2011. 1. 28. 10:29
지난 27일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을 받은 일본의 재정악화는 1990년대 거품붕괴 이후 토목사업을 통한 대대적인 경기부양책과 감세조치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으로 지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비교해 복지수준이 크게 낮은데도 국내 일각에서 일본의 신용도 추락을 ‘복지 포퓰리즘’과 연결짓는 것은 사실 왜곡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재정적자 팽창과 일본경제의 미래’ 보고서(2008년 9월)에 따르면 미와자와 내각 시절인 92년 8월 경기종합대책으로 10조7000억엔(약 144조원)을 지출한 것을 시작으로 2000년까지 9차례에 걸쳐 124조엔(약 1670조원)에 달하는 추가재정을 경기부양에 투입했다.

경기부양책으로 투입한 특별재정지출의 대부분은 도로건설 등 토목 위주의 공공사업에 쓰였다. 
일본 정부는 또 94년과 98년, 99년 등 세 차례에 걸쳐 감세 위주의 대대적인 세제개혁을 단행했다. 94년부터 96년까지 3개년에 걸쳐 소득세에 대한 특별감세정책을 실시한 데 이어 소득세의 각종 공제를 확대하고 세율도 인하하는 세제개혁을 추진했다.
또 98년과 99년 두 차례 법인세의 기본세율을 37.5%에서 30.5%로 7%포인트 인하했다. 소득세는 94년부터 2002년까지 약 44조엔(약 590억원)의 감세가 이뤄졌다.

결국 90년대 초반만 해도 주요 선진국 중 가장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던 일본의 국가 재정은 20년 만에 OECD 회원국 중 최악의 상태로 전락했다. 90년 GDP의 68.6%이던 재정적자는 올 연말 200%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장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정책이 일본 재정악화의 주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도 일본경제 보고서에서 “일본의 재정적자가 급속히 확대된 것은 거품붕괴 이후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조치를 반복하는 가운데 성장둔화 및 디플레이션 장기화로 세수가 감소한 것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노령화로 사회보험 지출이 늘어나면서 소비세 인상 등 재정건전화가 시급했지만 정부가 차일피일해온 것도 화근이었다. 일본의 장기침체 과정을 연구해온 박종규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토목건설 위주의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정책, 사회보험 지출증가가 얽혀 재정악화를 가져왔다”며 “일각에서 말하는 ‘복지 퍼주기’가 재정악화를 몰고 왔다는 논리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日 만성적 재정위기 ‘수렁’… 증세·복지 강화에 ‘길’ 있다



재정파탄 위기상황에 놓인 일본은 앞으로가 더 암울하다. 전문가들은 증세와 복지 강화의 두 축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이 대안이라고 지적한다. 소비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인상해 재원을 마련한 뒤 저출산 대책을 비롯한 복지 수요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경제의 활력을 키워야만 일본 경제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은 인구 감소다. 일본은 1995년 생산연령인구(15~65세)가 감소로 돌아선 데 이어 2005년 총인구마저 감소로 바뀌면서 경제·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총인구는 2005년 1억2777만명에서 2050년 9515만명으로 25% 감소하지만 생산연령인구는 같은 기간 8442만명에서 4390만명으로 48%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고령화율은 같은 기간 20.2%에서 39.6%로 증가하면서 노령인구 1인당 생산연령인구 수는 3.3명에서 1.3명으로 줄어든다. 젊은층의 노인 부양 부담이 그만큼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 저출산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결국 경제 활력을 저하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일본 정부는 89년 합계출산율(15~49세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아기 수)이 1.57명으로 떨어지자 취업여성에 대한 보육서비스 지원을 확충하는 등의 저출산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저출산 문제가 다양한 사회·경제적 현상에 의해 유발되는 복합적 현상임을 간과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경기 진작을 위한 감세 조치로 세수기반이 약화되면서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것도 실패요인이었다.

특히 2003년 고이즈미 정부가 제조업 부문까지 파견노동을 허용하면서 고용시장은 더 불안해졌고 이는 내수 부진과 저출산 현상 심화를 불러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사회안전망하에서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급여도 적은 젊은이들이 결혼이나 아이 낳기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2009년 집권한 민주당 정부는 사회안전망 확충을 저출산 해결의 근본 대안으로 보고 어린이 수당 증액 등 조치를 취했지만 재정여력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중학생 이하 자녀에게 월 2만6000엔(약 35만원)씩 주겠다는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예산낭비를 막기 위해 토건 중심의 공공사업 지출을 줄이겠다는 공약도 얀바댐 건설공사를 슬그머니 재개키로 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도 보인다. 


결국 재원 마련이 문제다. 하지만 일본의 조세부담률은 27.4%(2007년)로 38.4%인 캐나다는 물론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아 인상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유럽은 물론 중국(13~17%), 한국(10%)에 비해서도 낮은 5%인 소비세의 인상이 해법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져 있다. 다만 리더십이 취약한 데다 소비세 이슈로 선거 패배를 경험한 민주당 정부가 결단을 내릴지는 의문이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는 소비세 인상 등 증세와 이를 기반으로 한 실질적인 저출산 대책 등 복지 확충이 긴요하다는 것이 일본 현지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