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예전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됐어요. 같이 살더라도 생각이 다르니 도리없지 않나요.”
일본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에 사는 고교생 료헤이(17·가명)의 부모는 갑자기 이혼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갑자기였다. 적어도 3·11 동일본 대지진 전까지는 이혼 얘기가 나온 적이 없었다.
료헤이의 집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70㎞가량 떨어져 있다. 피난구역에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원전사고가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이자 일단 사이타마 현의 친척집으로 피신했다. 보름쯤 머문 뒤 어떻게 할지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엄마는 “고리야마는 방사능에 오염돼 있어 못 돌아간다”는 태도였다. 반면 현지에서 수십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공장사장인 아버지는 “갓난아기가 있는 부하직원도 고리야마에 산다”고 맞섰다.
료헤이가 아버지 편을 들며 귀향했고 새학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 패인 골은 깊어졌다. 외할아버지는 1945년 히로시마에서 원폭의 버섯구름을 직접 지켜봤다. 도쿄에서 살던 시절에도 광화학스모그를 피해 회사에서 1시간반 가량 떨어진 교외로 집을 옮겼다. 이런 외할아버지를 보며 자란 엄마는 방사능에 민감했다. 집회에 다녀온 엄마는 “앞으로 아기를 가져야할 세대가 가장 조심해야 한다더라”며 방사능 얘기를 자주했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세뇌시킬 셈이냐”며 화를 냈다. 아버지는 원전사고 이후 끊었던 담배에 다시 손을 댔고 툭하면 화를 냈다. 부부간 대화가 끊기면서 꼭 전할 말은 부엌에 있는 화이트보드 메모로 대신했다. 지진 넉달만인 7월 부부는 이혼하기로 합의했다. 료헤이는 “차라리 함께 피난이라도 갈 수 있도록 원전사고가 한번 더 터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쿄신문은 18일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의 한 가족의 사례를 전하며 “대지진이 평온했던 가정의 일상을 뿌리째 앗아갔다”며 보도했다.
아이들의 방사능 피폭을 걱정해 적극 행동에 나서는 주부들과 이를 ‘과민반응’이라고 몰아붙이는 남편이 갈등을 겪으면서 파경에 이르거나 별거생활에 들어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자기 주장을 앞세우기 보다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통합을 중시해온 일본사회에서 좀처럼 없었던 현상들이다.
도쿄 신주쿠의 주부 사쓰키(38·가명)는 원전사고 이후 아들(4)이 다니는 유치원에 우유급식을 주지 말라고 했다가 엄마들 사이에 ‘몬스터 페어렌츠’(극성부모)로 낙인찍히고 아이마저 따돌림을 당했다. 동네에선 “늦게 본 아이라 지나치게 챙긴다”는 뒷말도 나돌았다.
보다 못한 남편이 “도쿄에 살면서 뭘 그리 유난스럽게 구느냐”며 부부싸움이 시작됐고 사쓰키는 아이들과 기후현의 친청으로 낙향해 버렸다.
수도권에서 고 방사선 지역으로 꼽히는 지바현 마쓰도시의 미호(37·가명)도 집안의 방사선량을 측정한 결과 연간 피폭한도를 넘어서자 지난달 도쿄의 직장을 그만두고 두 아이와 규슈의 가고시마현으로 피난했다.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의 양해를 얻긴 했지만 원치 않는 별거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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