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창업자는 신'...지배구조 후진성 탈피못한 일본

서의동 2011. 11. 23. 12:28
“창업가는 신과 같은 존재이니 아무 생각없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이오(大王)제지 창업 3세인 이카와 모토타카(井川意高·47) 전 회장이 마카오의 카지노에서 100억엔이 넘는 회사자금을 탕진해 구속된 뒤 직원들이 한 말이다. 오너 일가가 회사를 사유물처럼 주무르지만 사원들은 입을 다물고 회사경영이 파탄으로 치닫는 걸 지켜봐야 했던 분위기를 대변한다.



대규모 회계부정을 저지른 올림푸스에 이어 터진 다이오제지 사건은 상명하복, 가부장적 문화에 사로잡혀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탈피하지 못하는 일본형 기업경영의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지난 22일 특별배임 혐의로 구속한 이카와 전 회장은 지난 7∼9월 자회사 4곳에 지시해 본인명의 은행 계좌 등에 7회에 걸쳐 모두 32억엔(약 478억원)을 입금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다이오제지가 지난달 설치한 특별조사위원회는 이카와 전 회장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9월까지 자회사 7곳에서 106억8000만엔(약 1595억원)을 이사회 승인이나 담보없이 빌렸다고 밝혀 배임액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카와 전 회장은 구속되기 직전 “주식 선물거래와 외환 거래에서 손실을 낸 뒤 우연히 카지노에서 돈을 벌었고, 이후 깊이 빠져들었다. 자회사에서 빌린 돈 100억엔 남짓을 모두 카지노에 썼다”고 밝혔다. 이카와 전 회장은 마카오의 카지노에서 하룻밤에 1억5000만엔(약 22억4000만원)을 날리기도 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이카와 전 회장은 자회사 간부에 ‘내일까지 계좌로 입금하라’고 지시하면서 돈을 빌린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 것을 요구했다”며 “오너 일가가 그룹전체의 경영권과 인사권을 쥐고 있어 지시에 반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다이오제지의 자회사 4곳 사장들도 특별배임에 공모하는 등 그룹전체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일본 제지업계 1위 기업인 다이오제지는 이 사건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창업자의 손자인 이카와 전 회장은 도쿄대를 졸업한 뒤 1987년에 입사해 2007년 6월 사장, 지난 6월에는 회장이 됐다.
 
일본에서 오너경영 기업들이 문제를 일으켜온 사례는 적지 않다. 과자업체 후지야(不二家)는 2007년 과자제품에 표시된 소비기한을 조작했다가 오너일가 사장이 사임했고, 세이부(西武)철도는 2005년 창업 2세인 쓰쓰미 요시아키(堤義明) 회장이 보유주식을 과소신고해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로 기소됐다.

산요(三洋)전기도 부적절한 회계처리로 2007년 창업오너가 퇴진했다. 오너출신 경영자들이 기업규율에 둔감한 데다 이들이 전횡을 휘둘러도 견제가 어려워 곪아터질 때까지 문제가 감춰져왔다고 산케이신문은 분석했다.
 
지난 8일 주식투자 손실을 감추기 위해 1000억엔이 넘는 회계부정을 해온 광학기기 대기업 올림푸스에서도 지배구조의 후진성이 드러난다. 올림푸스에서는 회사 경영을 감시해야 할 야마다 히데오(山田秀雄) 상근감사가 경영진과 함께 회계부정을 공모했던 것으로 드러나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기쿠카와 쓰요시(菊川剛) 사장 겸 회장이 2001년부터 장기집권하면서 외부 경영감시체제가 기능정지 상태였던 탓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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