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집중분석] 하시모토의 정치적 자양분은 '폐색감'

서의동 2011. 11. 29. 12:55
오사카부(大阪府). 서울의 3배쯤 되는 면적에 인구 880만명이 모여사는 일본 제2의 도시다. 과거 에도(江戶)시대에는 ‘천하의 부엌’으로 불릴 정도로 물자와 사람이 모여드는 상업 중심지였다.

하지만 현재 오사카는 ‘지반침하’ 상태다. 오사카 주민의 1인당 소득은 1996년 이후 15년간 20%가 감소했다. 2005년 들어서는 소득수준이 제3의 도시인 나고야(名古屋)에도 뒤처졌다. ‘제2의 도시’라는 간판이 무색해지면서 오사카 주민들은 열패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47개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가장 낮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지난 27일 오사카 시장선거에서 당선된 하시모토 도루(橋下撤·42)의 정치적 자양분은 이 열패감이다. 오사카에서는 “하시모토 같은 극약이 필요하다”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시모토는 오사카부 지사로 재직하던 시절 민의를 앞세워 관료조직을 몰아붙였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하시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시모토와 파시즘의 합성어다. 오사카 시장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과 최대 야당 자민당, 공산당까지 가세해 지원한 히라마쓰 구니오(平松邦夫·63) 현 시장은 그를 “독재자”라며 네거티브 선거전을 펼쳤지만 민심은 하시모토가 주장해온 관료조직 개혁, 예산삭감 공약에 표를 던졌다.

리더십 부재의 중앙정치와 비효율적인 관료행정 속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곳을 찾지 못한 유권자들의 분노가 하시모토를 통해 분출된 것이다.
 
기성정당 3곳의 지원을 받은 연합후보를 단기필마로 격파한 하시모토의 기세에 중앙정치권은 전율하고 있다. 하시모토를 19세기 후반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를 쓰러뜨리고 메이지(明治)유신을 일으킨 지방 웅번(雄藩)의 무사에 비유하기도 한다.

벌써부터 하시모토를 중심으로 하는 정계개편론이 나온다. 일본의 대표적 우익 인사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 지사와 ‘다함께 당’의 와타나베 요시미(渡邊喜美) 대표 등을 묶는 보수대연합 구상이다.
 
하시모토 당선자는 27일 밤 두 시간 넘게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오사카도(都) 구상을 지렛대로 중앙정치권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방자치법 개정이 필요한 오사카도 구상에 국회가 발목을 잡을 경우 그가 대표로 있는 지역정당 ‘오사카 유신회’에서 국회의원 후보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는 회견에서 “긴키(近畿·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역) 일원에서 국회의원을 내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연내 준비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시모토의 칼날이 향한 곳은 기성정치권뿐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성립된 전후(戰後) 질서 전체다. 그는 3·11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드러난 ‘원전마피아’에도 날을 세웠다. 오사카시가 주요 주주인 간사이전력은 그의 당선에 당혹해했다.

전력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산업계 기득권층의 대변자격인 게이단렌(經團連)도 그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다. 유세기간 동안 <슈칸분슌(週刊文春)> 등 유력 주간지들은 하시모토 부친의 과거와 출신배경 등을 끄집어내 네거티브 캠페인을 펼치면서 중앙정치권의 불안감을 대변했다.

요네쿠라 히로마사(米倉弘昌) 게이단렌 회장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오사카도 구상이 무엇을 지향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불편해했다. 미쿠리야 다카시(御廚貴) 도쿄대 교수는 “하시모토는 체제의 파괴를 내걸고 있고, 그에 대해 지지가 모이고 있는 것”이라고 요미우리신문에 논평했다.

하시모토의 ‘폭주형 리더십’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는 당선 기자회견에서 “선거결과에 나타난 민의를 무시하는 오사카시 직원은 시청을 떠나라”고 선전포고했다.
 
강상중 도쿄대 교수는 최근 경향신문에 게재한 칼럼에서 “지난 20년에 걸친 경제침체 및 중핵도시의 지반침하와 함께 높은 자살률, 저출산·고령화와 고용불안 등 사회불안을 끌어안은 일본에서는 특히 도시권에서 유권자의 정치적 폐색(閉塞)감이 깊어지고 있다”며 “정권교체로 대변되지 못한 유권자의 분노가 포퓰리스트적인 ‘갈채 정치’에서 활로를 찾으려 하고 있다”고 ‘하시모토 현상’을 진단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