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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손정의의 ‘경계넘기’(2021.1.29)

재일동포 기업인 손 마사요시(孫正義·64)는 고교 시절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를 읽고 에도시대 말기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에 매료됐다. 시코쿠의 하급무사였던 료마는 시대를 뛰어넘는 혜안과 지략으로 일본 근대화의 길을 연 인물이다. 료마가 탈번(脫藩·자신이 속한 제후국을 벗어남)의 결행을 통해 새 시대를 연 것처럼 손 마사요시도 16세의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름으로써 ‘경계를 넘는’ 인생을 펼쳐갔다. 손 마사요시는 귀국 후 후쿠오카에서 ‘유니슨 월드’라는 컴퓨터 도매회사를 차렸다가 이듬해인 1981년 소프트웨어 도매, 컴퓨터 잡지 출판 등을 하는 소프트뱅크를 창립했다. 소프트뱅크는 1994년 상장 이후 1996년 야후저팬을 인수하며 성장궤도에 올랐다. 2006년에는 영국의..

여적 2021.05.25

[여적]한·일 가교 이수현 20주기(2021.1.22)

일본의 전철망은 촘촘하기로 유명하다. 광역자치단체를 잇는 간선철도부터 짧은 구간을 오가는 ‘마을 전철’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플랫폼 스크린도어 설치는 2010년대 들어서야 본격화됐고, 그 전까지는 사람이 선로에 뛰어들거나 떨어지는 사고가 잦았다. 일본 철도는 정시운행이 잘 지켜지지만, 인명사고가 많은 노선에선 열차가 서서 낭패 보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사고의 절반 이상이 ‘자살’이라는 사정을 고려하면 가볍게 불평할 수만은 없다. 2005년부터 10년간 철도 자살 사건은 6000건에 달했다. 2001년 1월26일 저녁에도 한 취객이 선로에 뛰어들었다. 도쿄 도심을 순환하는 JR야마노테선의 신오쿠보역이다. 플랫폼에 있던 일본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당시 47세)와 유학생 이수현씨(26세)가 취객을 구..

여적 2021.05.25

[여적]북한 지도자 직함(2021.1.12)

미·중 갈등이 신냉전으로 치닫던 지난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과 중국 지도자에 대한 호칭 격하(格下)운동이 벌어진 바 있다.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PRC)이나 ‘차이나’ 대신 ‘중국 공산당’으로, 시진핑 국가주석을 ‘주석(president)’이 아니라 ‘총서기(general secretary)’로 부르는 식이다. 총서기는 시진핑 주석이 겸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직함이다. 대중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운동을 확산시켰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 권위주의 체제를 비판하려는 일종의 ‘색깔공세’였다. 운동은 꽤 조직적이어서 지난해 5월 발간된 백악관의 대중전략 리포트에는 시진핑 주석의 직함이 모두 ‘총서기’로 표기됐다. 미 의회 공화당 의원들은 공문서에서 ..

여적 2021.05.25

[경향의 눈]국가보안법 놔두고 ‘표현의 자유’ 외치나(2020.12.31)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누명을 썼다가 지난 25일 대법원 판결로 7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홍강철씨는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받은 경험을 묻자 “1주일이 아니라 하루도 버티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가 갇힌 독방은 안에서는 열 수 없는 구조였고, 폐쇄회로(CC)TV가 24시간 감시했다. 구치소에 머물며 검찰에 가서 조사받는 방식과 달리, 생활공간과 조사공간이 동일할 경우 피조사자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실상이 폭로되면서 조사기간이 단축되고, 독방 수용은 폐지됐다. 국가정보원법 개정으로 대공수사권도 3년 뒤 경찰로 이관된다. 하지만 국정원이 탈북인들을 조사하는 기본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홍씨 변호인인 장경욱 변호사는 “이대로라면 국정원의 간첩 생산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칼럼 2021.05.25

[여적]'깜깜이' 예산 소소위(2020.12.5)

국회가 지난 2일 본회의에서 558조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깜깜이’ 심사와 나눠먹기 증액이 되풀이됐다. 지역구 민원이 집중되는 국토교통위, 농림축산해양위, 산자위 등을 중심으로 증액 요구가 쇄도하면서 상임위 예비심사에서만 정부 예산안보다 9조6000억원이 불어났다. 예결위에서는 예산안 제안설명→전문위원 검토보고→종합정책질의→부별 심사 또는 분과위원회 심사→예산안 조정소위 심사→찬반토론의 순서를 거쳐 예산안을 확정한다. 예결위 의원만 50명에 이르다 보니 본격 심사는 여야 의원 15명으로 구성된 예산안 조정소위가 맡는다. 하지만 심사 막바지 국면이 되면 ‘소(小)소위’로 불리는 비공식 협의체가 등장해 최종 조율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올해에는 정성호 예결위원장과..

여적 2021.05.25

[경향의 눈] '바이든의 전략적 인내' 없게 하려면(2020.11.26)

‘미국 오바마 정부 초기 북한이 쏜 미사일 한 방이 전략적 인내를 초래했다’는 인식에는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은하 2호’를 발사한 것은 2009년 4월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 특별연설을 하기 몇 시간 전이었다. 세계의 시선이 프라하에서 일제히 평양으로 쏠리며 체면이 구겨지자 오바마의 대북 태도가 일거에 경직됐다. 그런데 북한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한·미 양국은 북한 급변사태 대비 ‘작전계획5029’를 구체화한다. 한·미 군수뇌부는 ‘북한 정권교체’를 공공연히 거론했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공개석상에서 “북한에 대한 전면전, 북한의 불안정 사태, 정권교체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칼럼 2021.05.25

[여적]이란의 반등(2020.11.27)

“수십년의 긴장과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외교와 조정, 협력을 보여주는 결정”(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으로 평가된 2015년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란 핵합의)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으로 파기 수순에 돌입했다. 이란을 적대국으로 돌리고 페르시아만을 중심으로 중동을 갈라 친미 진영을 결집시키자는 것이 트럼프 중동정책의 핵심이다. 이란을 파트너로 삼으려던 오바마의 중동정책을 거꾸로 세운 것이다. 지난 9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바레인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 협정’ 체결로 이 구상은 급진전했다. 이스라엘은 최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걸프지역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극비 방문했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운신의 폭을 넓혔다. 이란과 중동..

여적 2021.05.25

[여적]북한의 금연법(2020.11.6)

한국 사회에서도 1980년대까지는 사람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사무실은 물론이고 집집마다 안방에 큼직한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시내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워댔다. 하지만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 제정으로 흡연에 대한 법적 규제가 도입되기 시작했고,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가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금연이 급물살을 탔다. 북한의 금연운동도 그다지 늦은 편은 아니다. ‘던힐’을 즐겨 피우던 애연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 담배를 끊은 것을 계기로 흡연의 폐해가 지적되기 시작했고, “담배는 심장을 겨눈 총과 같다”는 식의 금연 포스터가 곳곳에 걸렸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2005년 ‘담배통제법’을 제정해 병원이나 진료소, 열차, 버스 등 대중교통..

여적 2021.05.25

[여적]사람잡는 UHP(unit per hour)(2020.11.2)

1936년에 공개된 영화 에서 주인공 리틀 트램프(찰리 채플린 역)는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는 제품의 나사를 조이는 것이 업무다. 잠시 쉬려 해도 사장이 텔레스크린에 등장해 호통친다. 일에 치인 트램프는 모든 사물을 조이려는 강박증에 걸려 한바탕 소동을 벌이다 정신병원에 끌려간다. 컨베이어 벨트는 조립생산 방식(assembly line)을 구현하기 위해 고안됐다. 미국 미시간주의 포드 자동차 공장(하이랜드 파크)은 4층에서 시작된 작업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자동차가 점차 완성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노동자들은 제자리를 지키며 할당 업무만 완수하면 되는 방식으로 노동효율을 극대화했다. 포드 자동차의 모델 T는 이런 방식을 통해 730여분의 조립시간이 93분으로 단축됐다. 테일러리즘, 포디즘 ..

여적 2021.05.25

[여적] ‘평화어’ 한글(2020.10.27)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는 일제강점기 조선 지식인들을 매료시켰다. 의 작가 홍명희는 ‘조선 최초의 에스페란토인’이라는 뜻을 담은 ‘벽초(碧初)’를 호로 했다. 청록색은 에스페란토의 상징색이다. 벽초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 지면에 고정란을 만들어 논객들의 글을 에스페란토로 실었다. 1920년 창간된 문학동인지 ‘폐허’ 표지에는 한자 ‘廢墟’와 에스페란토 ‘La Ruino’가 나란히 쓰였다. 1925년 창립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즉 카프(KAPF)는 에스페란토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의 약자다. 에스페란토는 폴란드 안과의사 루드비코 자라로 자멘호프가 1887년 만들었다. 자멘호프는 언어의 차이가 불화를 낳는 만큼, 모든 이들이 쉽게 배워 쓸 수 있는 공통어가 있다면..

여적 2021.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