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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빛바랜 아베의 최장수 총리(2020.8.25)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07년 9월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하자 1년 만에 물러났다. 후임인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등 자민당 총리들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총선 패배로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집권 3년3개월간 3명의 총리가 등장했다. 6명의 ‘단명 총리’를 거치면서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주요 7개국(G7) 회의 같은 국제 행사장에서 일본 총리들은 외톨이 신세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무려 5명의 일본 총리에게 “미·일 동맹은 굳건하다”고 다짐해야 했다. 미 국무부 관리들이 새 일본 총리의 이름을 헷갈려하는 장면에 일본인들은 혀를 찼다. 민주당 정권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은 ..

여적 2020.09.15

[여적]토지공개념(2020.8.3)

노태우 정부는 군사쿠데타 주역이라는 비판이 무색할 만큼 시대흐름에 부응한 여러 정책들을 추진했다. 공산권 및 북한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북방정책이 그랬고, 부동산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시도한 ‘토지공개념’도 혁신적이었다. 1980년대 후반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으로 시중에 돈이 흘러넘치자 여유자금이 부동산에 몰려들었다.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풀린 돈들도 땅값을 밀어 올렸다. 부동산 투기에 따른 집값폭등으로 서민들의 불만은 임계점으로 치솟았다. 집권 첫해인 1988년 13대 총선에서 패배해 정국 주도권을 상실한 노태우 정부에 부동산 문제는 정권의 존립을 위협했다. 조순 부총리, 문희갑 경제수석 등 경제관료들은 연일 “개혁이 없으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경고(경향신문 1989년 ..

여적 2020.09.15

[여적] ‘오프 에어(off air)’ 발언(2020.7.18)

기자들은 취재원들을 만날 때 취재수첩을 꺼내 메모하거나 녹음기를 켜놓는 경우가 많다. 취재할 내용이 많거나 복잡한 경우 불가피하게 쓰는 방법이지만, 취재원들은 수첩과 녹음기 같은 소도구에 의외로 긴장한다. 그래서 인터뷰가 끝나 녹음기를 끄고 수첩을 집어넣을 때 취재원은 안도감에 긴장을 푼다. 이때 ‘오프 에어(off air) 발언’에서 허심탄회한 속내가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명민한 기자는 이 ‘진실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오프 에어’ 발언은 파장을 낳는다. 2012년 3월26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을 끝낸 직후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나눈 대화가 그대로 공개됐다. 당시 미국이 유럽 일원에 미사일방어(M..

여적 2020.09.15

[여적]한강 ‘블랙호크 다운’(2020.7.4)

미국은 베트남전쟁을 거치며 다목적 헬기의 필요성을 깨닫고 개발에 착수했다. 이런 요구에 따라 미국 시코르스키사가 개발한 헬기가 ‘블랙호크’로 불리는 UH-60다. 1978년부터 도입된 블랙호크는 1950년대 말부터 운용돼온 UH-1이 로쿼이를 대체하며 특수전, 정보수집, 전투구출, 의무후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실전에는 1983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을 시작으로 파나마 침공, 걸프전 등에 투입됐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의 거처를 급습하는 과정에서도 특수작전용 블랙호크가 동원됐다. 하지만 블랙호크는 흑역사로도 유명하다. 1993년 10월 소말리아 모가디슈 전투에서 벌어진 ‘블랙호크 다운(추락)’이 대표적이다. 미 합동 특수전사령부는 레인저 부대 등 특수부대를 투입해 군벌 아이디드 장군 ..

여적 2020.09.15

[여적]마스크 외교(2020.4.29)

지난 3월4일 인천의 자매우호 도시인 중국 웨이하이시가 마스크 20만개를 보내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확진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지던 당시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웨이하이시는 “인천시에서 보내주신 응원과 지원에 감사드리며 인천시를 돕기 위해 마스크를 보낸다”는 감사 편지도 동봉했다. 국내 감염자가 급증하기 전인 2월 중순 인천시가 웨이하이시에 보낸 마스크 2만개가 10배로 불어나 되돌아온 것이다. 일주일 뒤인 11일에는 중국 정부가 보낸 N95 등급의 방역마스크 10만장과 의료용 마스크 100만장, 방호복 10만벌이 한국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코로나19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등 중국 전역에 500만달러 규모의 지원에 나선 데 대한 보답이다. ‘마..

여적 2020.09.15

[여적]심은경의 일본 영화상 수상(2020.3.10)

일본에서 지난해 6월 개봉된 영화 의 주연을 한국 배우 심은경이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영화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리관저(官邸)로 불리는 권부의 비리를 정면으로 파헤치는 신문기자 요시오카 에리카 역할에 일본 배우들이 부담을 느끼다 보니 한국 배우에게 배역이 돌아갔다는 일본 주간지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한국 개봉 때 방한한 가와무라 미쓰노부 프로듀서는 “일본 여배우에게는 전혀 출연 제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는 아베 신조 정권을 뒤흔든 ‘가케학원 의혹’과 흡사한 사학 스캔들을 소재로 한다. 정부가 가케학원 산하의 오카야마 이과대학에 수의학부 설치를 허가하는 과정에 아베 총리가 개입한 사건이다. 스캔들에 연루된 고위 관료의 자살, 총리와 가까운 기자의 성폭력 사건(이토 시오..

여적 2020.09.15

[여적] 김여정의 독설(2020.3.5)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한국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8년 2월9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들과 함께 비행기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 다음날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고,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함께 관람하는 등 2박3일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갔다. 고전적인 헤어스타일에 수수한 옷차림의 ‘백두혈통’ 김여정은 방한기간 중 품격 있는 태도로 한국 사회에 깊은 인상을 심었다. 2018년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내는 모습에 ‘신스틸러’ ‘열일하는 김여정’ 같은 수식이 붙기도 했다. 그런 김여정이 지난 3일 밤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여적 2020.09.15

[여적] 착한 임대료(2020.2.29)

서울은 나날이 새로워진다. 이건 찬사가 아니라 비아냥이다. 오래된 거리와 가게를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을 오랜만에 찾은 외국인들이 예전 들렀던 가게를 찾아갔다가 사라져 낙심하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임대료가 턱없이 오르기 때문이다. 철거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노포(老鋪) 냉면집 ‘을지면옥’도 결국 철거될 운명이다. 숱한 근대유산들이 표지석 하나 달랑 남기고 스러졌다. 지대추구라는 불가사리는 600년 도시 서울에 쌓인 ‘세월의 더께’까지 남김없이 먹어 치운다. 저금리하에서 대량으로 풀린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한국 경제의 밑동이 썩어간다. 자발적인 근로의욕과 창의력, 높은 저축열, 모험적인 기업가정신이 넘치던 성장시대의 다이너미즘은 말라붙은 지 오래다. 지금은 어린 학생들조차 ‘강남 건물주’를 ..

여적 2020.09.15

[여적]언택트 사회(2020.2.25)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해 여성들과의 부적절한 신체접촉으로 구설에 오르자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스트레이트 암 클럽(straight arm club)에 가입하라”고 충고했다. 한쪽 팔을 뻗은 정도로 상대방과 거리를 두라는 의미다. 재일코리안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樹)의 소설 에서 왕년의 복서였던 아버지는 권투를 배우려는 아들을 걱정하며 말한다. “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가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그 원 안에서 꼼짝 않고 앉아서, 손 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만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주먹을 뻗어 그린 반지름 1m의 원이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안전과 존엄을 지킬 수 있는 ‘퍼스널 스페이스’인 셈이다. 그러나 일..

여적 2020.09.15

[여적]트럼프의 ‘기생충’ 헐뜯기(2020.2.24)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하던 지난해 6월 트럼프를 형상화한 6m 크기의 대형 풍선이 런던 국회의사당 상공에 떠올랐다. 알몸에 기저귀를 찬 채 잔뜩 찡그린 ‘아기 트럼프’가 한 손에 휴대전화를 쥔 모습이다. 무릎을 칠 만큼 트럼프의 특징을 잘 잡아낸 ‘베이비 트럼프’ 풍선은 영국은 물론, 미국 내 반(反)트럼프 시위대의 인기 아이템이다.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언행을 유아행동론으로 분석한다. 떼쓰기의 절정기인 ‘미운 두 살(terrible two)’의 행태라는 것이다. “두 살 때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 제한돼 이랬다저랬다 하고, 자신의 힘을 착각해 무모한 실험을 하며, 타협과 양보를 할 줄 모르며, 남을 괴롭히고도 억울하다고 주장한다”(워싱턴포스트). 이런 트럼프를 상대해야 하는 미..

여적 202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