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3. 22:27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6월30일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한 50분 중 절반가량을 한·미 연합훈련 중단 요구에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의 집을 나서던 김 위원장의 표정이 밝아 보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적인 언질을 받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두 달이 못돼 한·미 연합훈련이 실시됐다. 북한은 미국은 물론 한국에도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현지 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쪽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북·미 비핵화 협상은 ‘쌍중단’(북한의 핵·장거리미사일 실험과 한·미의 군사훈련 중단) 원칙에 양측이 동의함으로써 출범했다. 봄철 한·미 연합훈련이 연기됐고, 김 위원장도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중단 방침으로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5개월 뒤 한·미 양국은 해병대 연합훈련을 횟수만 줄여 실시함으로써 ‘쌍중단’ 원칙을 흔들었다.

 

게다가 남북관계 복원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국방비를 역대급으로 늘리는가 하면 F-35A 스텔스기 같은 첨단 공격형 무기를 들여왔다. F-35A는 청주기지에서 떠서 15분 만에 300㎞ 떨어진 평양의 주요 시설을 공격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다. 군은 무인기, 정밀유도탄, 전자기펄스(EMP)탄, 경항공모함 등도 대거 도입할 계획이다. 군사합의서를 체결하며 긴장완화를 다짐했던 문재인 정부의 ‘이중적 행태’(7월25일 김 위원장 발언)에 북한이 당혹감을 느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부는 8월 한·미 연합훈련은 전시작전권 전환에 필요한 사전조치이고, 첨단무기 도입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일본 등의 군사력에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도 스텝이 꼬인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F-35A를 두고 주변 국가 방위용이라고 하는 건 북한이 ‘핵무력은 미국용’이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허무하다.”(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북한은 북한대로 지난 5월부터 11차례나 단거리미사일을 쐈고, 이달에 들어서는 사정거리 2000㎞가 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도 시험발사하면서 ‘쌍중단’ 궤도를 이탈하려 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고, 미국이 전략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집중시키던 2017년 못지않게 긴장이 고조될 우려도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제재완화 외에 제도안전(안전보장) 문제를 들고나왔다. 미국이 북한의 제도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비핵화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대시 정책의 첫번째 목록에 한·미 연합훈련이 올라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발언은 ‘평화경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같은 한담(閑談)을 벗어나지 못한다. 바둑으로 치면 ‘급한 곳’ 대신 ‘큰 자리’만 두는 격이다.

 

정부의 태도에는 중재 역할의 효력을 상실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종속변수로 전락한 데 따른 무력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북한이 최근 금강산에 지어진 남측 시설을 철거하고 ‘우리식’으로 새로 짓겠다고 한 데는 한국 정부가 ‘가만있지 말고 움직이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남측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남북 화해협력은 꿈도 꾸지 말라는 통첩이기도 하다.

 

정부가 할 일은 자명해 보인다. 북·미 협상만 기다리며 좌고우면하지 말고 대북 제재와 제도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이끌어냄으로써 ‘쌍중단’ 원칙을 복원해야 한다. ‘대화를 하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자’는 것이니 명분도 확실하다. 11월 중순 열리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거나, 그게 여의치 않다면 문 대통령이 직접 ‘연합훈련 중단’ 방침을 천명하는 것도 방법이다. 비핵화와 별개로 재래식 군비통제와 긴장완화 등을 다루는 ‘남·북·미 군사협정’(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을 체결하는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금강산관광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재개를 모색해야 한다. 금강산은 물론 개성에서 개별관광을 우선 시행하는 것으로 활로를 뚫어 나갈 필요가 있다. 우물쭈물하다간 남북관계가 아예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남북 접촉을 막는 유엔사의 월권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 몇 가지 원칙을 묶어 ‘문재인 독트린’을 내놓는 건 어떨까. 좀 더 과감해지지 않으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없다.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 자유왕래와 교역 문호개방을 담은 7·7선언(1988년)을 발표한 것은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이 발생한 지 8개월도 채 안됐을 때였다.

 

*2019년 10월31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원제는 '[경향의 눈] 남북관계, 무엇을 할 것인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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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3. 22:24

오키나와 슈리성 경향신문DB

“정전은 그야말로 바다의 왕국답게 용궁처럼 보였다. 일층은 정면 좌우로 길게 벌린 것 같았는데 정중앙에 두 겹의 지붕이 높직하게 올려다보였다. 맨 꼭대기의 용마루에는 황금의 용 머리가 푸른색 뿔을 세우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붉은 기와를 얹은 지붕에는 흰 회칠과 붉은 전돌로 나무 잎사귀를 새겨넣었고, 이층 지붕의 활처럼 둥그런 가리개에는 황금색과 푸른 비늘에 뿔을 쳐들고 이빨을 드러낸 용두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황석영 <심청> 중 슈리성에 대한 묘사)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에 있는 슈리성(首里城)은 중국과 일본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물이다. 옛 류큐(琉球)왕국의 정치·군사·문화의 중심지로 14세기 축성됐다. 왕의 거처인 정전(正殿)은 옻나무로 붉은 칠이 돼 있고, 기와 형태에도 중국의 영향이 배어난다. 용의 장식이 많이 쓰인 것도 일본 건축물과 다른 점이다. 반면 일본에서 온 사절의 접대를 위해 지은 남전(南殿)에는 일본풍의 장식이 도입됐다. 1492년 건국 이래 중국,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꾀해야 했던 류큐왕국의 처지를 엿볼 수 있다.

 

류큐왕국은 1879년 일본에 병합돼 오키나와현으로 바뀌면서 근·현대사의 격랑에 본격적으로 휩쓸렸다. 그 상흔이 지금도 슈리성터에 남아 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군은 슈리성 지하에 깊이 30m의 참호를 파고 미군과의 결전에 대비했다. 가지 모양으로 뻗어나간 전체 갱도의 길이는 1㎞를 넘는다. ‘슈레이문’을 지나 ‘소노향우타키석문’ 옆 계단을 내려가면 참호 출입구가 보인다. 1945년 3월 말부터 3개월간 오키나와 전투에서 10만명이 넘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희생됐다. ‘철의 폭풍’으로 불리는 공중폭격, 함포사격, 지상전투의 총·포탄에 수많은 주민들이 스러져갔고, 슈리성도 파괴됐다. 전후 성터는 류큐대학 캠퍼스로 사용되다가 1992년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20주년을 기념해 국영공원으로 복원됐다.

 

31일 새벽 슈리성에 불이나 정전을 포함한 주요 건물 7채가 전소됐다. 현지 주민들은 “신과 같은 존재가 타버렸다”고 탄식했다. 슈리성은 아픈 역사를 겪어온 오키나와인들의 혼이 깃든 영지(靈地)였던 것이다.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깊은 마음의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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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3. 22:23

아베 신조 총리가 새로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에게 참배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일본 고유종교인 ‘신도(神道)’는 일본인들의 생활 속에 깊게 뿌리박고 있다. 동네마다 한 곳 이상 신사(神社)가 있어 주민들이 가볍게 들러 복을 빌 수 있다. 매년 동네별로 열리는 축제 마쓰리(祭り)도 신사가 중심이다. 마쓰리의 목적이 ‘신을 찬양하며, 신과의 교류를 통해 오곡풍성, 상업번창, 이웃이나 가족의 번영을 기원하는’(일본 정부 관광국) 것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신사에 보관된 미코시(神輿·가마)를 메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 마쓰리의 핵심이기도 하다. 마쓰리는 대체로 동네 상인들이 주축이 되고 주민들도 준비 단계부터 적극 참여한다. 일본의 마을공동체가 여전히 결속력을 유지하는 데 신도가 톡톡히 한몫하는 셈이다.

 

군국주의 시대 신도는 국가종교였다. 신사 숭배가 국민의 의무였고, 신궁요배(神宮遙拜·신궁 쪽을 향해 참배함)가 일상화됐다. 신도는 전장에 나가는 일본인들의 영혼을 마취했다. 군인들은 전우들과 “죽어서 야스쿠니에서 만나자”고 다짐했고, 어머니들은 “아이가 죽어 천황(일왕)님께 쓰여 기쁘다”고 했다. 야스쿠니신사가 아들을 군신(軍神)으로 거두면서 아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그 죽음이 신의 후손인 일왕을 위한 것이었으니, 영광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을 점령한 연합국사령부가 정교분리(政敎分離)에 착수한 것은 이런 폐해 때문이다. 이듬해인 1946년 1월1일 히로히토 일왕이 신격(神格)을 부인하는 ‘인간선언’을 함으로써 정교분리 작업이 본격화됐지만 말끔히 청산되지 않으면서 불씨를 남겼다. 일본 헌법은 ‘국가 및 그 기관이 종교활동 및 종교단체에 공금을 지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전후 일본 총리들은 버젓이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보냈다.

 

22일 열리는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의 즉위식을 계기로 ‘정교분리’ 위반 논란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다이조사이 등 즉위 의식들이 종교색이 짙은데도 아베 정부가 국가예산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패전 이후 ‘상징 천황제’로 바뀌었지만 왕실 의식 중 상당수가 과거 전례를 답습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일본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지만, 일본 군국주의의 폭주에 시달렸던 주변국들은 불편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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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3. 22:22

경향신문DB

제19호 태풍 ‘하기비스’가 일본을 강타하면서 사망·실종자만 5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연 강수량의 3분의 1이 이틀 만에 쏟아지는 등 기록적인 폭우로 21개 하천의 제방이 무너지고 142개 하천이 범람하면서 막대한 침수피해도 동반했다. 태풍 피해소식을 알리는 일본 방송화면에는 불어난 강물로 지반이 깎여나가 단독주택이 통째로 무너지는가 하면 골프연습장의 철주가 인근 가옥을 두 동강이 낸 처참한 광경이 비쳤다.

 

일본은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탓에 국토 면적에 비해 자연재해가 많은 편이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이웃나라가 도와주면서 관계개선의 전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일 간에는 거꾸로 양국감정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흘러갔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2만명이 쓰나미에 휩쓸리는 대재해가 발생했을 때도 국내 일부 신문이 1면 헤드라인을 ‘일본 침몰’로 뽑아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일본에서 초유의 대지진이 발생해 바닷속으로 침몰한다는 가상영화에서 딴 제목이지만 ‘상처에 소금 뿌린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번 하기비스 태풍 피해를 두고 국내 일부 누리꾼이 조롱하는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슬픈 기사인데 왜 웃음이 나냐”라거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태풍이 확 쓸어가버렸으면” 같은 험한 말들이 기사 댓글난을 채우고 있다.

 

넉 달째로 접어든 한·일 갈등은 전쟁에 비유하면 참호를 깊게 파고 진지전을 벌이던 제1차 세계대전을 방불케 한다. 초기의 격렬한 공방은 사라졌지만, 지루한 소모전이 지속되는 형국이다. 그런데 평소 좋지 않은 사이라도 상대가 힘든 처지에 놓였을 때는 위로하고 돕는 게 인지상정이다. 정부 간에 대립하더라도 일반 시민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인터넷 공간에서라도 양국이 ‘휴전’을 선포하는 것은 어떨까.

 

1914년 12월24일 제1차대전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은 성탄절을 맞아 짧은 휴전을 가졌다. 참호 속에서 총구를 겨누던 양국군이 ‘너희 쏘지 말라. 우리도 안 쏘겠다’라는 팻말을 앞세우고 서로 다가가 악수를 나눴다. ‘성탄절 휴전’을 이끌어낸 것은 군 지휘부가 아니라 참호 속에서 대치하던 병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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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3. 22:21

대화퇴의 위치 

퇴(堆·bank)는 대륙붕에서 불쑥 솟아 있는 해저지형이다. 육지의 고원처럼 윗부분이 평평하고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동해 중앙부에 펼쳐진 대화퇴(大和堆)는 강원도와 경상북도를 합친 크기(3만600㎢)에 가장 얕은 곳이 236m에 불과하다. 동해의 최저수심이 3700m, 평균수심이 1700m이고 보면 꽤 높은 해저고원이다.

 

대화퇴는 영양염류가 풍부한 데다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조경수역이어서 오징어, 꽁치 등이 두루 잡히는 황금어장으로 꼽힌다. 독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380㎞, 일본 이시카와(石川)현에서 서쪽으로 약 300~400㎞ 떨어진 대화퇴는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속하지만 1998년 한·일 신어업협정에서 중간수역의 동쪽 한계선이 동경 135도30분으로 그어지면서 일부가 한·일 공동수역으로 조정됐다. 속초·삼척·포항 등에서 500~650㎞ 떨어져 어선으로는 20시간 이상 걸리는 원양(遠洋)이지만 어획량이 많아 수지맞는 어장이다.

 

대화퇴는 북한, 러시아 해역과도 가까운 데다 최근에는 북한과 어로협정을 맺은 중국 어선들까지 나서면서 조업경쟁이 치열해졌다. 자연 각국 간 충돌이 잦은 ‘동북아의 화약고’가 돼가고 있다. 지난해 12월20일 발생한 한·일 ‘초계기 갈등’도 대화퇴 인근 해역에서 해군 광개토대왕함이 북한 어선 구조작업을 벌이던 중 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저공위협 비행을 하면서 불거졌다. 지난 2월17일에는 이곳에서 조업하던 동진호가 러시아에 나포된 일도 있었다.

 

지난 7일 북한 어선과 일본 어업단속선이 대화퇴 해상에서 충돌해 어선이 침몰하고 북한 승조원 60명이 바다에 빠졌다가 구조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북·일 간 마찰이 주목받고 있다. 북한은 최근 들어 대화퇴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2일 북한이 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떨어진 곳도 대화퇴 인근 해역이다. 반면 일본은 이곳에서 조업하던 북한 어선들이 동해 쪽 일본 해안으로 표착하는 일이 빈발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워왔다. 5개국이 각축을 벌이는 대화퇴는 동북아 지정학 불안정성의 표점(標點)이다. 대화퇴가 각국 어선들이 사이좋게 조업하는 평화수역이 될 가능성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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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3. 22:20

2019.10.2

 

지난해 4월27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수행한 리명수 인민군 총참모장 등 북한군 수뇌부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로 인사했다. 9월 평양정상회담 때도 인민군 위병대장이 “대통령 각하”를 외치며 문 대통령을 맞았다. 이젠 ‘이런 일도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1년이 지난 지금 남북관계는 전면 중단상태다. 지난해 12월14일 체육회담 이후 당국 간 회담의 문은 닫혀 있고, 민간교류도 전무하다.

 

북·미 협상이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7개월 만에 재개된다. 하지만 협상이 성공하더라도 남북관계가 가슴 뛰던 지난해로 돌아갈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북한 조평통은 광복절 다음날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 몇 달간 험한 말들을 쏟아내며 지난해 남북관계의 기억을 지우고 있다. 북한은 왜 남북관계를 닫으려 하는 걸까.

 

먼저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담은 것을 화근으로 꼽을 수 있다. 하노이에서 북한이 제시한 영변카드를 미국이 퇴짜를 놓으며 남북관계에도 불똥이 튄 것이다. 영변카드를 평양이 아니라 하노이에서 꺼냈더라면 대북제재 완화를 대가로 받는 거래가 성사됐을 개연성은 있다. 하지만 평양공동선언에서 영변을 포함시킴으로써 교착 중이던 북·미 협상의 모멘텀을 살려낸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평양공동선언은 양측의 합의인 만큼 한국 정부의 책임만도 아니다.

 

그보다는 남북 간 합의 이행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에 불만이 더 커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이행되지 못하면 기대를 품었던 분들한테 낙심을 줄 것”이라고 했다. 과거 남북 간 수많은 합의가 휴지 조각이 돼온 전철을 밟지 말자는 다짐이다. 그러나 남북이 지난해 합의한 교류협력 방안 중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외에 진척된 건 없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도 재개될 전망이 요원하다.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피할 길이 없다는 사정을 들고 있다. 하지만 관광은 유엔 제재대상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유엔제재의 ‘벌크캐시(대량현금) 금지 조항’을 이유로 금강산관광이 어렵다고 하지만, 제재를 회피 또는 우회하는 현금지급이 문제일 뿐 현금지급 자체는 문제가 안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중국, 유럽, 일본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북한에 대가를 지불하고 개별관광을 한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실마리는 풀릴 수 있다.

 

개성공단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가 2017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방적 구두지시로 개성공단 중단이 결정됐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그에 맞춰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조치의 원인무효를 선언하고, 재가동을 위한 남북협상을 추진하는 수순을 밟아야 했다. 제재문제가 까다롭긴 하지만, 한국 정부와 여론이 개성공단 재가동을 열망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발신할 필요가 있었다. 정부 초기부터 개성공단·금강산을 북·미 간 거래대상이 아닌 남북문제로 프레임을 짜야 했다. 민간교류의 물꼬도 과감하게 터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판문점선언) 합의한 뒤에도 방북 문턱을 낮추는 데 소극적이었다. 북한뿐 아니라 남북화해를 열망해온 시민사회도 대북정책의 ‘청중(audience)’임을 정부는 잊었는가.

 

그러는 사이 미국은 ‘워킹그룹’을 만들어 미국과 협의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도록 했다. ‘대북 외교권’의 박탈이다. 남북 간의 접촉은 유엔사가 가로막고 있다. 미국이 남북관계 진전을 반기지 않는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시절 당국자들은 미국과의 마찰을 불사해가며 독자적 정책공간을 확보해 나갔다. 문재인 정부에는 그런 ‘파이터’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가로막아온 적폐와 결별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은커녕 북한식당 여종업원 납치의혹 사건조차 풀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 정부가 대북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는 말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전쟁위험을 없애고, 북·미 대화를 궤도에 올려놓는 데 기여한 공은 아무리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북·미 중재역에 과도하게 매달리면서 남북관계를 북·미 협상의 디딤돌로 전락시킨 책임도 있다. 지금이라도 남북관계를 리부팅할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이전의 관성과 다른, 과감한 상상력과 지혜에 기반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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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3. 22:19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환경상 경향신문DB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정계은퇴 이후 행적은 일본의 정치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친정인 자민당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탈원전’ 소신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2014년 2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탈원전을 내걸고 입후보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를 지원했다. 5년5개월간 장수 총리를 지내며 은퇴한 그가 승산이 낮은 지방선거에 직접 출마도 아닌, 후보 지원에 나서 ‘정치적 제자’인 아베 신조 총리가 내세운 후보와 대결한 것은 ‘탈원전’ 소신 외에 달리 설명하기 힘들다.

 

고이즈미는 2013년 핀란드의 핵폐기물 최종처분장을 방문, 지하 400m의 암반에 구멍을 뚫어 만든 시설에 핵폐기물을 10만년간 보관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각성한 고이즈미는 “자민당만 방침을 바꾸면 일본은 원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기회 있을 때마다 탈원전을 주창했다.

 

이런 점에서 지난 11일 아베 정권 개각에서 그의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가 원자력방재담당상을 겸하는 환경상에 발탁된 것은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환경성은 원자력규제위원회를 외청으로 두는 등 원전정책과 밀접한 부처다. 신지로는 과거 후쿠시마 등을 자주 방문하면서 탈원전 의지를 다져왔고, 취임 일성으로 “어떻게 하면 원전을 유지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없앨지를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이튿날에는 후쿠시마 현지를 찾아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가 불가피하다는 전임 환경상의 발언에 대해 사죄하면서 “다시는 원전사고를 일으켜서는 안된다. 한 나라에서 두 번이나 일어나면 끝장이다”라고 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일본 최고의 아지테이터(선동가)’로 불릴 정도로 대중 장악력이 뛰어났다. 신지로도 준수한 외모와 부친의 후광 등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스타정치인으로, 총리가 되기에 유일한 약점이 ‘젊은 나이’(현재 38세)라는 평이 있을 정도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지난 15일 이바라키현 강연에서 신지로에 대해 “(원전 문제에 대해) 나보다 더 공부를 하고 있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고이즈미 부자의 ‘탈원전 콤비플레이’가 일본 정치의 관전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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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3. 22:17

2019.09.04

 

문재인 대통령이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하순 서울에서 열린 포럼에서 일본 정치인과 학자, 언론인들로부터 전해들은 일본의 현지 분위기는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휴가철에 만난 지역구 주민들이 한국 수출규제에 대해 ‘아베 정부 정책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며 ‘타협하지 말라’고 하더군요.”(자민당 의원) 일본 야당 의원은 “야당 지지자들조차 한국에 대한 감정이 나쁘다”고 했다. 일간지 논설위원은 “일본 정부가 삼성 등을 궁지에 몰아넣을 정도로 무리 수를 쓰지는 않겠지만, 일본이 피해를 보더라도 수출규제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아베 정권의 가장 잘한 일’로 꼽을 만큼 일본의 ‘반한’이 맹목(盲目)단계로 치닫고 있음을 확인했다.

 

한·일 갈등 두 달은 시중에 나와 있는 일본개론서를 다시 써야 할 만큼 일본의 낯선 얼굴이 드러난 시기였다. 고노 다로 외무상이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무례하다’고 면박한 것은 압권이다. 강제징용 가해 기업으로부터 압류한 자산의 현금화에 착수하기 전에 일본이 보복조치를 취한 것도 신중하다는 평소 이미지와 딴판이다. 판문점의 남·북·미 정상 회동에 세계의 시선이 쏠린 다음날 수출규제 카드를 던진 것은 ‘잔치에 재 뿌리자’는 심산이었을까. 국제사회로부터는 ‘오모테나시(진심 어린 환대)’라며 상찬받는 일본이 유독 한국에는 ‘다테마에(建前·표면적인 태도)’고 체면이고 다 집어던지며 달려드는 ‘다중인격’을 노출했다.

 

그래도 아베 정권의 속내는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할 수 있다. 이번 갈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부채의식을 털어내고, 한국의 비중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2015년부터 외교청서의 한국 관련 기술을 단계적으로 격하시켜온 것을 보면 꽤 오래전부터 이런 그림을 그려온 것 같다. 북한을 대체할 외부위협으로 규정하는 것도 염두에 둔 듯하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장기집권의 피로감을 극복하고 일본인들에게 내셔널리즘의 옷을 입혀 헌법개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부품·소재’로 한국이 동원되는 인상이 짙다. 이건 한국이 정부 수립 초기 반일과 반공으로 국가정체성을 확립했던 것과도 흡사하다. 좀 더 큰 틀에서는 일본이 동북아에서 뛰쳐나와 인도·태평양 전략에 본격 가담하기 위한 정지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자제하는 ‘냉온정지’ 상태가 조건이겠지만, 어찌됐건 아베 정부가 구상하는 새로운 지정학 질서에 ‘혐한’이 동원되고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

 

한·일 갈등 초기 한국의 대처는 평균점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이 ‘자유무역 질서’에 반하는 행위임을 국제사회에 환기시키며 명분을 쌓았고, 한편으로 대화하려는 자세를 견지했다. 시민들도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한·일 갈등 국면에서 한국 정부가 어떤 전략적 목표로 임하고 있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상황에 대한 대응방안은 있지만, ‘갈등 이후’ 한·일관계에 대한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대외전략과 외교정책 전체와의 연관성 속에서 대응방안을 짜온 것 같지도 않다. 한·일 갈등이 문재인 정부의 외교 목표인 한반도 평화구축과 충돌할 우려를 검토한 흔적도 안보인다. 한반도 평화구축에는 주변국의 협력과 지지가 필수적인데, 지금 상태로 일본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란 불가능하다.

 

‘일본 리스크’는 사실 오래전부터 거론돼 왔음에도 정부는 이에 둔감했다.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선언을 한 것은 최종 종료되는 11월 하순까지 양국이 집중력을 갖고 갈등을 해소하자는 협상 제안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면서 한·미 간 마찰로 번졌다. 물론 동맹 간에도 불협화음은 얼마든 나타날 수 있다. 한·미·일 3각 안보축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짜려는 미국과 한·중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는 한국이 GSOMIA에 입장차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한·미 간 마찰’ 자체가 아니라 ‘마찰 이후’의 대미외교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지를 정부가 제대로 시사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특수성 탓에 근·현대사에서 숱한 곡절을 겪어온 만큼 한국인들은 외교에 민감하다.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외교와 국내정치의 경계도 희미해 졌다.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면 정부가 현재 정세와 대응방향, 외교전략의 큰 그림을 가능한 범위에서 설명하고 인식을 공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된다. 듣기 귀찮을 정도로 외교당국자들이 발신해야 궁금증이 풀릴 수 있다. 국내 정치적 이익에 외교를 종속시킨다는 불필요한 오해가 더 이상 쌓여서는 곤란하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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