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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기고] 책으로 보는 위기의 한국경제

서의동 2008. 9. 23. 19:01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라는 괴물이 전세계 경제를 습격하면서 몇 년 간 호황을 누리던 글로벌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의 외환시장은 전쟁시기  환율을 방불케 할 정도의 급변동을 보이고 있고 연내 3,000포인트를 찍을 거라던 이명박 대통령의 호언과 달리 주식시장도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첨단금융의 전위대들인 투자은행InvestmentBank들이 줄도산을 하자 정부가 재정을 들여 이들을 ‘국영화’하는 아이러니도 등장하고 있다. ‘시장에 의한 규제를 죽기보다  싫어하고, 정부의 규제는 악의  근원’처럼 여기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의 기운이 뚜렷해지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곧바로 나타나 세계 경제질서를 바꿀 것이란 기대는 아직 어렵다. 

 이런 현상을 ‘강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볼 처지는 아니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의 금융시장이 미국에 철저하게 종속돼 있어 태평양 건너 벌어지는 이벤트들을  하루하루 조마조마하며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이런 외부 요인  외에 내적으로도 여러 문제에 짓눌려 있다. ‘경제살리기’의 구호를 내걸고 정권을  잡은 이명박 정부와 경제팀이 우리 경제를 빈사상태로 몰아가고 있는것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명박 정부 경제팀은 개발파시즘과 신자유주의의 나쁜 면만  섞어놓은 정책들을 잇따라 구사하면서 우리 경제를 나락으로 몰고 있다. 정권초기 인위적으로 원화가치를 떨어뜨리며 환율폭등을 초래했고 그 파장이 세계적인 유가와 곡물가격 상승추세와 맞물리면서 물가폭등, 내수침체 등의 후폭풍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의 핵심원리는 수출 대기업과  부유층이 잘되면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떡고물이 돌아간다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낙수 또는 적하효과라고도 한다) ’이다. 하지만 이는 외국에서 이미 현실에 맞지 않아 폐기되다시피 한 정책이다. 오히려 지금은 소비성향이 높은 서민들이 경제활력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할 상황이라는 게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생각이다. 

 정부의 잇단 정책오류와 바깥에서 불어오는 금융위기 폭풍이 한국경제의 앞날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시중 서점에는 한국경제를 진단하는  서적들이 적지 않게 나와 있다. 『거짓말 경제학』(최용식 지음,  오푸스)과 『대한민국 경제 빈곤의 카운트 다운』(김재인 지음, 서해문집)도 한국경제가 처한 현실을 출발점으로 하는 책들이다. 

『거짓말 경제학』은 “MB노믹스부터 ‘나쁜 사마리아인들’까지  성장의 가면을 쓴 구라 경제학 전격해부”라는 도발적인 부제를 달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환율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출발, 현재 한국경제가 당면한 위기의 징후들을 소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저자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 말고도 사실은 세 차례의 알려지지 않은 외환위기가 있었다는 점 등은 눈길을 끄는 대목들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시도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우석훈 박사에 대한 비판은 부제만큼 강렬하지만 정연하지는  못하다.
 

 예를 들면, 장 교수가 1950년대 이후 유럽의 복지국가를 ‘자본주의 황금시대’라고 표현한 것을 비판한 대목(69쪽)은 납득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 표현을 두고 “(장 교수가) ‘국가개입주의의 성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과학자로서 할  일이 아니다. 정치적 혹은  이념적 선동가나  할 일”이라고 비판한다.  국가 개입주의가  실제로 1960년대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는 점에 대해 치밀한 논거를 들어 반론을  제시하지는 않고 장 교수의 어휘 선택만을 비판하는 격이어서 당혹스럽다. 

 저자는 또 신자유주의에 대한 장 교수의 비판을 반박하면서 “최근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사민주의를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으로 전환했다”(61쪽)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독일과 프랑스의 복지지출은 여전히  영·미형 국가들에 비해 현격하게 높고, 사르코지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금융자본주의의 실패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과다한 복지지출을 효율적으로 ‘미세조정’한 사례이지 국가 운영방식이 신자유주의로 쏠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웬만한 독자들이라면 아는  내용들이다(사실 이 문제만 놓고도 책 한 권 분량의 해설이 필요할 것이다).
 

 우석훈 박사에 대한 비판도 독자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저자는  우 박사의 책들이 신자유주의를 배척하자는 단순한 명제를 위해 다양한 소재들을  이 책(『88만원세대』)에 담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의 흥미를 끌만한소재들을 끌어모았을 뿐이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그 소재들은 인기영합주의의 산물에 불과하다”(87쪽)고 비판했다. 하지만 우 교수의 책들이 왜 인기 영합주의인지를 논증하고 있지 않다. 국내  경제학자의 절대다수가 미국박사인 현실에서 우 박사는 드물게 유럽형 경제학(본인은 생태경제학이라고 부른다)을 공부해 딱딱한 수치와 원론적 설명에 신물이 난 독자들에게 ‘경제학적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우 박사는 『88만원 세대』에서 한국경제는 계층간 양극화의 문제 외에도 개발독재 시대 경제성장의 수혜를 입은 4-50대 세대와 그렇지 못한  1-20대 세대간의 양극화라는 특별한 현상에 주목했던 것인데, 저자는 우 박사에게 “경제학자라면 당연히 아일랜드가 어떻게 성공을 거뒀는지를 연구해서 불안감과 절망감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위안시켜주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89쪽)라고 연목구어緣木求魚식 지적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 빈곤의 카운트 다운』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미국의 몰락, 석유에 의존해온 글로벌 경제의 어두운 미래가 한국 경제와 우리의 삶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를 차분하게 정리했다. 경제성장의 잠재력마저 훼손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오류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의 대안으로 제시한 몇 가지 대목은 의문을 갖게 한다. 저자는 북한을 이야기하며 자원전쟁 시대에 자원매장량이풍부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경쟁력을  갖춘 노동력과 대륙 전진기지로서 지리적 위치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남북간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은 대공황 이후 1930년대 일본 군국주의의 만주진출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약탈적 성격이 강한  신자유주의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국내에서  축적위기에 몰린 자본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북한을 경략해야 한다는 제국주의 논리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논리모순을 범하고 있다. 

 마지막 단원인 ‘희망 잃은 자들을 위한 마지막 나침반’도 한국경제의 위기해소를 위해 각기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반성하고 대의를 위해 소아를 희생해야 한다는  ‘경제도덕론’을 펴고 있다.
“치과의사들은 우리나라 중산층마저도 선택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임플란트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부를 확대하고 이를 해외 휴양지와 유학용  아파트에 쏟아부을 것인지, 아니면 이가 없어 한평생 고통받을 이웃들에게 씹는 행복을 전해주는 진정한 의사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225쪽)

 이윤추구를 당연시하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삶의 작동방식을 생각한다면 이런 당위론적인 해법은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막가파식 정책운용 하에서 살아가는 독자들은 좀더 총체적이고 정밀한 대안을  열망한다. 노무현 정부의 집권 5년이 좌파에 대한 혐오감을 키웠지만 지금 국면은  다시 좌파의 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시민+복지  기획위원회가 엮어낸 『한국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산책자)은 주목할만한 기획으로 평가된다. 특히 조세 및 재정정책, 건강보험 문제 등 복지국가와  관련한 의제들에서 좌파의 약점이었던 ‘디테일의 부족’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공동저자인 이상이, 정세은은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재정 및 조세개혁의 모색’에서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돈의 문제’에 대해 해법을 제시한다.  그의 해법은 국민의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와 동맹을 역사적으로 형성해나가는 복지국가 전략을 위해  ‘선 복지 확충, 후 조세개혁’을 제안하고 이를 위해 상당기간 적자재정 편성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진보진영이 그간 복지국가의  실현을 주장해왔지만 ‘돈의  문제’에서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구호에 힘과 지지를 싣지  못했던 점을 감안할 때 이런 논거는 좀더 논의를 발전시켜야 할 대목들이다.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과 부동산 세제 완화  등 이명박 정부의 ‘토건국가’적 본색이  점차 노골화하는 가운데 『부동산계급사회』(손낙구 지음, 후마니타스)도  일독이 필요한 책이다.
민주노동당에서 심상정 전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던 저자가 한국경제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와 부동산이 한국경제를 어떻게 위기에 빠뜨렸고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갈라놨는지를 방대한 통계를 통해 분석하고 있다. 정부가 주

거복지  비용을 민간 건설업체에 떠넘기고 민간 건설업체는 분양가를 높여 결국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한국형  아파트 분양제도’의 왜곡된 주거복지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 부동산 정책 전반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을 구체적인 통계와 함께 배울 수 있다.
 

※기획회의에 실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