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거 본거 68

애플이 될 수도 있었던 소리바다의 수난사

‘랜선’으로 불리는 광통신망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의 어느날. 사무실 동료를 통해 ‘소리바다’라는 사이트를 알게 됐다. 자신이 보유한 파일을 인터넷을 통해 주고받는 P2P방식의 이 서비스에 흠뻑 빠져 며칠동안 밤낮으로 음악을 다운받던 기억이 새롭다. 2000년 5월 등장한 소리바다는 4개월 만에 가입자가 75만명, 이듬해에는 600만명, 3년만에 2000만명을 기록했다. 음반이 절판돼 유통되지 않는 음악, 제3세계 음악 등 기존의 유통망에선 구할 수 없는 음악을 소리바다를 통해 공유하게 되자 네티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소리바다는 그저 평범한 인터넷 음악서비스의 하나일 뿐이다. 지난 10년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실문화)는 이 과정을 추적한다. P2P서비스는..

읽은거 본거 2010.10.14

요즘 경제와 책들

※기획회의 280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년이 지난 지금 세계경제는 외견상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2009년 초 동유럽 재정불안, 하반기 두바이의 신용경색, 올해 초의 남유럽 재정위기 등 간헐적인 여진(餘震)들이 있었지만 세계 각국의 대규모 경기부양 조치에 힘입어 경제는 ‘불안한 회복’ 단계에 놓여있다.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2008년 9월15일)을 계기로 금융위기가 본격화할 당시엔 1930년대 대공황의 재판이 되리라는 예측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세계가 블록경제로 분열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몰고온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각국이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경기부양에 나서면서 ‘급한 불’은 꺼진 셈이다. 2년이 지난 지금 ..

읽은거 본거 2010.09.23

[서평] 社史도 모범인 안철수연구소

이 책은 사사(社史)다. 사사는 회사의 허물은 감추고 장점은 부각시키는 경우가 흔하다. 안철수연구소 사람들이 지은 (김영사)라고 해서 허물을 100% 가감 없이 내보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책의 서평을 쓰기로 한 것은 안철수연구소의 이름값 때문이다. 이 책은 창업자인 안철수가 1988년 의대 박사과정 시절 컴퓨터 모니터에서 ‘브레인’이라는 이름의 바이러스를 발견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보통 책자의 3분의 2쯤 되는 플로피 디스켓이 통용되던 시절부터 안철수는 바이러스와 씨름해 왔다. 박사과정과 군복무를 하는 동안 7년간 잠을 쪼개가며 백신 개발에 매달려온 안철수는 진로를 결정할 시점에서 망설임 없이 의대 교수직을 버리고, 백신 프로그램 개발자로의 험난한 여정에 뛰어든다. 이 책은 후반부로 ..

읽은거 본거 2010.09.13

다이소의 100엔숍부터 일본형 '세븐일레븐'까지

최근 일본 출장길에 도쿄시내 중심부 유라쿠초에 있는 가전양판점 ‘빅 카메라’에 들렀다. 빼곡하게 전시돼 있는 가전제품들마다 손글씨로 쓰인 할인 안내표시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고 남대문 시장에서처럼 점원들이 목청 높여 호객을 하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 씽씽한 실내공간 속에서도 열기가 느껴졌다. 유라쿠초와 여기서 멀지 않은 긴자에는 이런 특정 업종의 전문양판점들이 즐비하다. 최근 국내에 진출한 유니클로의 긴자점도 부근에서 성업 중이다. ‘일본 상업의 얼굴’로 통하는 긴자·유라쿠초 지역은 유통업체들 간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격전지이고, 수많은 유통업체들이 명멸한 곳이다. 일본 유통의 근현대사는 꽤 드라마틱하다. 미국에서 시작된 편의점 체인 세븐일레븐을 일본형으로 표준화한 세븐일레븐 재팬 이야기나 가전업체의 대표..

읽은거 본거 2010.08.20

[이번엔 다르다]경제 위기마다 반복되는 뻔한 소리

2007년의 기억을 잠깐 떠올려보자.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어서자 증권사들은 한국증시가 1980년대 일본과 흡사한 대세 상승기를 맞았다는 등의 리포트를 쏟아내며 투자를 부추겼다. 한 자산운용사가 내놓은 펀드에 가입하려는 투자자들이 길게 줄을 서는 일도 드물지 않은 풍경이었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회사들이 하나둘씩 파산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 IT 거품붕괴가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우려들도 조금씩 흘러나왔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낙관론에 묻혀 버렸다. 금융위기는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의해 빚어진다. “이번엔 다르다”는 신드롬은 여기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역할을 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에도 이번엔 다르다는 논거들이 지배했다. ① 미국은..

읽은거 본거 2010.08.05

[블루 이코노미] 정말 놀라운 생태계의 자연순환 원리

환경위기 시대에 대안모델로 제시되는 ‘녹색산업’이 미덥지 않은 것은 생산과 소비, 소비 이후의 전 과정에서 지속 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화학세제를 대체하기 위해 야자유 지방산으로 개발된 생분해성 세제를 보자. 이 세제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인도네시아의 광활한 열대우림이 야자수 농장으로 바뀌면서 오랑우탄의 서식지가 파괴됐다. 녹색산업은 또 환경효과는 크지 않은 반면 기업에는 더 많은 투자를, 소비자에게는 더 많은 지불을 요구한다.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경기침체기에는 더 주목받기 힘들다. (가교출판)를 쓴 저자 군터 파울리는 생분해성 세제를 생산하는 에코버에서 일하면서 산업계가 생태계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경제의 비효율적 사이클을 생태계의 논리에 따라 전환하..

읽은거 본거 2010.07.02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반란

미셸 캉드쉬. 한국인을 트라우마에 휩싸이게 하는 이름이다. 국가 부도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1997년 캉드쉬 총재는 한국에 초긴축 정책과 구조조정 등 감내하기 힘든 조건들을 요구했다. 연 20%대의 살인적인 고금리에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대량해고 사태를 몰고 왔다. IMF의 처방에 대해 당시에도 가혹하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캉드쉬 총재와 협상했던 임창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우리나라는 물가가 안정돼 있고 재정도 건전해 고금리 정책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호소했지만, 캉드쉬는 “고금리 정책은 IMF의 전통적 처방이라 뺄 수 없다”며 강경입장을 보였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6월초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가 “당시..

읽은거 본거 2010.07.02

소비자 영혼에 호소하는 마케팅

아웃도어 신발과 의류를 생산하는 팀버랜드는 모든 제품에 성분을 기록한 라벨을 부착한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생산됐는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의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소비재 생산 다국적 기업인 프록터 앤드 갬블(P&G)은 물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저소득 주민들에게 식수정화용 분말을 봉지단위로 싸게 판매한다. 한 봉지 사면 10ℓ의 물을 정화해 마실 수 있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다농푸즈는 ‘한 컵의 요구르트로 세상을 구하자’는 취지로 저렴한 유제품을 만들어 빈민들에게 공급한다. 공정무역, 환경경영의 아이콘이었던 영국기업 바디샵은 빈곤국의 농산물을 제값을 주고 사들여 제품을 만든다. 이들 기업은 ‘사회적 비지니스 기업’으로 분류된다. 사회와 인간, 문화, 환경에 대한 보호와 공존..

읽은거 본거 2010.07.01

세계 금융위기 이후 -책 소개

한국기자상 수상에 빛나는 경향신문의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시리즈를 엮은 책입니다. 8명의 기자들이 9개월에 걸쳐 해외취재를 포함해 현장을 누비며 쓴 글들입니다. 기자들외에 각계 전문가들과 학자들의 기고도 있어 무게감을 높였습니다. 처음 이 기획에 참여했을 때는 과연 가능할까 우리 역량으로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었고,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학자들도 반신반의했었습니다. 그만큼 다루려는 주제자체가 방대하기 이를데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냈습니다. 시리즈를 신문에 연재하면서 찬사도 받았고, 가끔씩은 너무 늘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신문에 싣기에는 너무 깊은 내용들이고 지나치게 어렵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묶어놓으니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을 적절히 배합한 탁월한 책이라..

읽은거 본거 2010.03.12

추노 재밌다

드라마 홈페이지 를 보니 공감가는 대목이 있어 옮겨놓는다. 지금 우리 서민들도 당시의 노비들 신세와 크게 다르지 않는 듯. 불과 몇 백년 전, 화폐가치로 계산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었던 이들은 유사시엔 사고 파는 것은 물론, 선물로 주기도 했고, 버릴 수도 있었다. 물건과 딱히 다르지 않은 대우를 받던 그들의 수는 조선 시대 초기를 지나 폭발하더니 급기야 임진왜란 직후인 1609년. 한반도 전체 인구의 47퍼센트, 한양 전체 인구 53퍼센트까지 육박하게 된다. 당시 양반들과 평민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이니 저잣거리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이들의 다수인 셈이다. 이런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거리에 나가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 되는 세상을? 절반 이상의 ..

읽은거 본거 2010.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