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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조선은 왜 무너졌는가>-1

노동부 차관을 지낸 관료출신의 저자(정병석)가 신제도학파적 관점에서 조선이 몰락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망한 책이다. 본격적인 역사학자가 아닌 만큼 학술적인 가치가 어느정도인지는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사료들을 제시하며 저자의 주장을 논증한다. 아래는 1장 '조선은 왜 가난했을까' 챕터를 요약한 것인데 이후의 논지가 개략적으로 압축돼 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작은 정부, 작은 재정 위주로 나라를 설계해 전국을 망라하는 도로, 교량, 운하, 관개시설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노력하지 않았고 그럴만한 재정의 여력도 없었다. 농민들은 생산성이 높은 이앙법을 선호했지만 정부는 저수지와 관개시설이 부족하다며 이앙법을 금지하는 정책을 폈다. 농업의 생산력이 부진했기 때문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조선 군대는..

읽은거 본거 2017.01.28

[책]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 <분열과 통일의 독일사>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로 나온 독일사. 책 제목에 '분열과 통일'이라는 수식어가 말해주 듯 독일의 역사는 복잡다단하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중앙집권적인 절대권력을 수립했던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큰 울타리내에 소규모 마을들이 곳곳에 점재했던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제국은 큰 울타리를 제공해 외부의 침입을 막아줄 뿐 중앙집권화의 여력은 없었던 셈이어서 각지의 제후들이 자기 영역에서 분권적인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비교적 느슨한 제국질서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이 복잡다단한 역사를 솜씨있게 요약해낸 저자(메리 플부룩)의 역량이 돋보인다. 독일사를 살펴보기로 한건 요즘 클래식을 들여다보다 호기심이 생겨서다. 바흐, 헨델, 모차르트, 하..

읽은거 본거 2017.01.22

신카이 마코토 감독 <너의 이름은>-"첫사랑처럼 아련한 석양의 빛"

휴가 마지막날 일본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감독의 애니메이션 을 보고 왔다. 마지막에 살짝 눈시울이....(주책이다) 작품의 배경은 도쿄와 기후현 히다(飛騨)지역의 이토모리(糸守町)라는 시골마을(히다와 나가노 스와호수를 섞은 가공의 마을인 듯)이다. 히다는 3년전인 2014년 겨울 친구,후배와 셋이서 여행을 다녀왔는데 3000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는 고산지대에 온천으로도 유명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다. 신카이 감독은 "고교시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본 석양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만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 아름다운 석양에 대한 기억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고 한 일본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감독의 말처럼 작품에서 벌겋게 하늘을 물들이는 석양의 황홀한 광경이 자주 등장한다..

읽은거 본거 2017.01.15

[서의동의 사람·사이]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풀버전)

※1월7일자 인터뷰보다 긴 버전. 주진형(58)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전복(顚覆)적 시장주의자’쯤 되지 않을까. 그와 4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든 생각이다. 한국은 진정한 의미에서 시장경제가 작동된 적이 없는 만큼 시장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전복적’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는 부딪칠 필요가 있다면 누구와도 그럴 준비가 돼 있는 듯하다. 지난해 12월6일 열린 청문회에서는 재벌 총수들 바로 뒷자리에서 “재벌들은 조직폭력배들과 똑같다”고 발언해 청문회장을 뒤집어놨다. 한화투자증권 대표로 있던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라는 그룹 지시에 반기를 들다 수난을 당했다. 주진형은 분류하자면 진보에 가깝지만 진보진영 내 ‘수구적인 행태’에는 날을 세운다. 20대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의 ..

사람들 2017.01.06

[서평]개혁적 진보의 메아리(경제학자 김기원 유고집)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의 유고집이다. 블로그 등을 통해 틈틈이 쓴 글을 지인들과 후학들이 책으로 냈다. 실제 책을 읽어보면 단순 블로그글이라고 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김교수의 혜안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그는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에 나타나는 타성적 사고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거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노동귀족’의 문제를 방치할 게 아니라 적극적인 해법을 모색하려는 그의 치열함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책 내용에서 참고할 만한 대목을 그대로 옮겨놓는다. (산별노조 왜 안되나)한국에서도 산업별 노조를 만들려고 오랫동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헛수고입니다. 이미 거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격차가 굳어진 상황에서 임금수준을 비슷하게 만드는 산업별노조를 거대기업 노동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요..

읽은거 본거 2016.12.26

[서의동의 사람·사이]<판도라>박정우 감독 “과장된 허구? 사고 터지면 현실은 그 이상”

핵연료는 늘 찬물에 잠겨있어야 한다. 열을 식히지 않으면 핵반응이 과도하게 진행되면서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멜트다운(melt down)’이 발생한다. 이 때부터 핵은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 폭주한다. 동일본대지진이 있던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에서는 전원공급이 끊겨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자 곧바로 멜트다운이 시작됐다. 지진으로부터 88시간만에 4개 원자로 중에서 3곳의 건물이 수소폭발을 일으키고 방사성물질이 대량 유출되는 최악의 참사로 이어진다. 도쿄특파원 업무를 시작한지 닷새 뒤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재임기간 3년간 주된 취재대상이었다. 현지취재를 몇차례 하면서 피폭 걱정이 떠나지 않던 ‘실존’문제이기도 했다. 재난 블록버스터 는 세계최대의 원전밀집 지역인 동남권에서 원전..

사람들 2016.12.26

[서의동의 사람 사이] 박주민 의원(풀버전)

※12월17일자 지면에 실린 기자보다 조금 긴 원문입니다. 박주민은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큼지막한 백팩에 치약·치솔, 물티슈, 휴지 따위를 챙겨 다닌다. 언제 어디서 ‘노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는 세월호 유족들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사흘, 지난 9월에는 백남기 농민이 누워있던 서울대 병원에서 이틀을 보냈다. 잠이 모자라면 아스팔트, 병원 탁자, 본회의장 가리지 않고 곯아 떨어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국회표결을 앞두고 국회로비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불펴고 철야하는 사진이 돌자 ‘민주당이 박주민 때문에 거지당이 돼 간다’는 글이 달렸다. 부스스한 머리, 넓은 이마에 선명한 주름살, 약간 졸려 보이는 눈매는 온라인 ‘드립’의 딱 좋은 소재다. ‘노숙자처럼 초췌한 모습, 만성 수면부족..

신문에 쓴 글 2016.12.19

[책]조선에서 보낸 하루

저자인 김향금 선배가 쓴 책. 본다본다 하면서 책장에 꽂아놨다가 오늘 다 봄. 18세기말 한양을 1일투어 하듯 둘러본 역사 기행서다. 가볍고 경쾌한 필체속에 당시 정치체제는 물론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전반의 풍경을 담았다. '내가 조선시대를 이렇게 몰랐던가'라는 자괴감이 드는 책. 듣도보도 못한 옛 어휘들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여기 등장한 어휘만 익혀도 역사소설 읽을때 요긴할 것 같다. 동궐 = 창덕궁과 창경궁을 함께 이르는 말 파루 = 새벽 4시에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33번의 종소리 문루 = 성문위에 지은 다락집 궐내 각사 = 궁궐안에 지은 관청구종 = 관에 속한 노비로 벼슬아치들의 출근을 돕기 위해 아침마다 파견됨초헌 = 외바퀴 수레로 주로 판서급이 타고 다닌다벽제 = 지위가 높은 사람이 지..

읽은거 본거 2016.12.11

[책]특혜와 책임-한국 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연세대 송복 명예교수는 흔히 보수로 분류돼 있어 그다지 그의 주장에 대해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그의 책 (시루, 2014년)을 보고 다시 보게 됐다. 은 올해 8월에 낸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상층의 '천민성'을 다양한 각도로 지적하고, 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한국사회가 한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역사적 동력이 된다고 강조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한마디로 '특혜'받는 사람들의 책임이다. 특혜받는 사람들의 책임은 세가지로 나타난다.의 세가지는 '희생'이라는 말 하나로 축약되고 그 희생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첫째 목숨을 바치는 희생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혹은 심각한 안보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앞장서 '내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누온 특혜의 대가다. 둘째 ..

읽은거 본거 2016.12.11

우리의 소원은 전쟁

요즘 핫한 소설가 장강명의 장편소설이다. 지난해 를 읽은 뒤 이 작가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가 최근 나온 신작이라고 해서 냉큼 사봤다. 본문만 508페이지의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술술 읽힌다. 액션영화 같은 속도감이 느껴진다. 줄거리는 김씨체제가 붕괴된 이후 유엔 평화유지군이 진주해 있는 북한 황해도가 주 배경이다. 권력의 공백이 생기고 '자본주의'가 도입되자 돈맛을 알아버린 군부가 마약생산에 나서고 조폭을 기반으로 한 지역 토호들이 마약을 남쪽으로 밀수출한다. 이 과정에서 신천복수대로 불리는 북한의 특수부대 출신 군인, 지역 조폭 사업가, 평화유지군 파견군인, 지역 상인들이 뒤얽혀 배신과 복수의 드라마를 펼치고 있다. 장강명은 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붕괴의 가장 밝고 이상적인 시나리오를 고른 것"이라고 ..

읽은거 본거 2016.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