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 65

[여적]원자로 제어봉(2019.5.22)

1999년 6월18일 일본 이시카와현에 있는 시가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연료봉 사이에 삽입돼 있던 제어봉 5개가 아래로 빠지면서 방사선과 열이 급격히 방출되는 임계사고가 발생했다. 관할 호쿠리쿠(北陸)전력은 이를 내내 감춰오다 8년 만인 2007년 3월15일에야 공개했다. 이후 며칠 간격으로 각지 원전의 과거 사고가 차례로 공개됐다. 도쿄전력은 1978년 11월2일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에서 제어봉 5개가 빠져 7시간 반이나 임계상태가 지속된 사실을 무려 29년 만에 털어놓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대규모 방사성물질이 유출된 그곳이다. 원자로의 제어봉은 핵분열 반응 속도를 조절하는 안전장치로, 자동차의 브레이크에 해당한다. 핵연료 속 중성자를 흡수해 핵반응의 폭주를 막는다. 이처럼 중요한..

여적 2019.08.09

[여적]바둑과 한·일관계(2019.5.20)

일본이 바둑의 최강국이던 1960~1970년대엔 한국의 바둑 인재들이 일본으로 줄줄이 유학을 떠났다. 1962년 세계 최연소(9세) 프로기사가 된 조훈현 9단(66·현 자유한국당 의원)도 열살이던 1963년 일본에 갔다. 당시 한·일 간 기력 차가 상당해 한국에서 프로 입단을 했는데도 일본에서는 연구생 4급으로 시작해야 했다. 조훈현은 원로인 세고에 겐사쿠 9단의 내제자가 됐다. 이국 생활의 어려움을 견뎌가며 바둑 공부에 정진해 일본 바둑계의 촉망받는 신예기사로 성장했다. 9년 만에 귀국한 조 9단은 얼마 안 가 국내 기전을 휩쓸며 정상에 올랐다. 동갑내기 국내파 서봉수 9단과 라이벌전을 펼치며 바둑팬들을 열광시켰고, 또 다른 ‘바둑계의 별’ 이창호 9단을 길러냈다. 한국 바둑은 어느덧 실력에서 일본을 ..

여적 2019.08.09

[여적]말리 언니(2019.5.19)

‘한국 치즈의 아버지’ 지정환 신부(1931~2019). 벨기에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1958년 가톨릭 사제가 된 뒤 이듬해 부산항에 발을 디뎠다. 1964년 임실에 부임해 가난에 찌든 산골마을 농민들을 위해 산양을 기르고 산양유를 생산했다. 하지만 잘 팔리지 않자 치즈 생산에 도전했고, 곡절 끝에 성공해 1969년부터 치즈를 본격 생산했다. 제대로 된 치즈공장 하나 없던 당시 임실 치즈는 서울의 특급호텔에 납품될 정도로 인기였다. 지정환 신부는 치즈공장의 운영권, 소유권을 주민협동조합에 넘긴 뒤 장애인을 돕는 일에 남은 생을 보내다 지난 4월13일 선종했다. 그는 가수 노사연의 ‘만남’을 좋아해 장례식에서도 불러 달라고 했다. “우리들의 만남은 하나라도 우연이 없다. 그렇게 귀하게 만났으니 서로 사랑해..

여적 2019.08.09

[여적]미국과 이란·북한 핵 갈등(2019.5.9)

2001년 미국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한·미 외교가에서는 ‘ABC’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ABC는 ‘Anything but Clinton(클린턴만 아니라면)’의 약자로, 전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은 일단 부정하고 보는 태도를 가리킨다. 클린턴 대통령과 궁합을 맞춰 대북 햇볕정책을 추진해온 김대중 정부에 네오콘(신보수주의)을 표방하는 부시의 집권은 재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시는 9·11테러사건을 계기로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더니 클린턴 행정부의 ‘북·미 제네바 합의’를 파탄내고 2차 북핵위기를 촉발시켰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은 핵을 동결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경수로형 원자력발전소 2기를 건설해주는 한편 장기적으로 국교정상화를 하기로 한 합의다. ..

여적 2019.08.09

[여적]넌-루거법(2019.4.30)

북한 핵문제를 들여다보면 영어 이니셜로 된 여러 개념들과 마주친다. 지난해 북·미협상이 본격화되면서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CVID가 대표적이다. 2차 북핵위기 이후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제시한 CVID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 방식을 가리킨다. 리비아 핵폐기 과정에 적용된 CVID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재등장하자 북한은 ‘패전국에나 적용하는 방식’이라며 반발했다. 결국 지난해 북·미 1차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는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로 후퇴했지만 강경파들이 호되게 비판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CVID로 돌아섰다. 북한은 비핵화 조건으로 CVID와 한 ..

여적 2019.08.09

[여적]코미디언 출신 대통령(2019.4.22)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일본 미야자키(宮崎)현 지사를 지낸 히가시고쿠바루 히데오(東國原英夫·61)는 코미디언 출신이다. 기타노 다케시가 이끄는 ‘다케시 군단’에서 만담으로 인기를 얻은 그는 지사가 된 뒤에도 방송에 나와 구수한 입담으로 지역 홍보에 발 벗고 나섰다. 그 덕에 미야자키의 토산품 판매가 껑충 뛰었고, 그가 ‘태양의 달걀’이라고 이름 붙인 미야자키산 망고는 유명 브랜드가 됐다. 비효율적인 공공사업을 통폐합하는 등 혁신행정으로 지지율이 한때 90%까지 치솟았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시장을 지낸 욘 그나르(52)는 정치인 풍자공연을 해오다가 친구들 권유로 ‘베스트당’을 창당했다. 그는 선거에서 시의 재정위기를 비꼰 무리수 공약을 내건 뒤 ‘공약을 지키지 않겠다’는 공약을 추가했는데 이..

여적 2019.08.09

[여적]지구 크기의 망원경(2019.4.11)

우리는 우주의 지금 모습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볼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우주일 뿐이다.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시리우스를 오늘밤 봤다면 그것은 8.6년 전의 형상이다. 육안으로 보이는 별들의 빛은 지구에 오는 데 4년에서 4000년이 걸린다. 아득히 먼 우주의 신비에 다가가기 위해 인류는 다양한 관측기구를 개발해 왔다. 17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굴절형 망원경으로 목성과 월면을 관찰하고 태양의 흑점을 발견했다. 그 뒤 대물렌즈를 거울로 대체한 반사망원경이 등장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빛 대신 전파를 모아 분석하는 전파망원경, 직접 우주공간에서 천체를 관측하는 우주망원경이 등장하면서 안드로메다 은하 너머의 깊은 우주까지 관찰할 수 있게 됐다. 현대 천문학에 가장 크게 기여한 망원경은 허블 우주망..

여적 2019.08.09

[여적]나토의 동진과 러시아(2019.4.4)

베를린 장벽 붕괴 두 달여 뒤인 1990년 1월31일 한스디트리히 겐셔 서독 외무장관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해 “독일 통일 뒤 동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동독에 주둔하던 소련군이 물러날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미국도 ‘나토의 동진(東進)’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나토의 현상유지’ 약속은 몇년 지나지 않아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을 속속 나토에 가입시키며 동쪽으로 세력권을 넓힌 것이다. 급기야 러시아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인 우크라이나까지 나토 가입을 추진하자 러시아가 실력행사에 나섰다.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 침공에 이어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양국..

여적 2019.08.09

[여적]일본의 연호(2019.4.1)

왕의 치세에 붙이는 연호(年號)는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에서 널리 사용돼 왔다. 중국은 한무제의 ‘건원(建元)’으로 시작해 청조 말까지 연호를 사용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영락(永樂)’으로 시작해 대한제국의 ‘광무(光武)’로 끝났다. ‘천황제’가 남아 있는 일본만이 서기 645년 도입한 이래 1400년 가까이 연호를 유지하고 있다. 왕이 바뀔 때마다 해를 세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우선 연호로는 미래나 과거를 표현하기가 곤란하다. 예컨대 서력 2048년은 연호로는 ‘헤이세이(平成) 60년’이 되지만 일왕 교체가 기정사실이 된 현재 시점에서는 쓸 수 없다. 그렇다고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새 연호를 빌려 ‘레이와(令和) 30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서력으로는 먼 과거를..

여적 2019.08.09

[여적]중국판 트로이 목마(2019.3.25)

동양에 대한 유럽의 공포감은 훈족이 시원이다. “훈족은 모두 신체가 건장하고 강하며 목이 튼튼하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과 목마름에 견딜 수 있도록 훈련돼 있다.” 4세기 로마의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의 훈족에 대한 묘사다. 훈족은 말을 달리며 발 받침대인 등자를 딛고 서서 활을 쏘는 ‘신공’으로 로마군단을 농락했다. 5세기 전반 프랑스 중부 오를레앙까지 진출한 훈족의 왕 아틸라는 유럽에서 소설과 그림, 오페라, 조각 등으로 형상화되면서 동양에 대한 공포를 전승했다. 800년 뒤 유럽은 다시 몽골에 의해 유린됐다. 몽골군은 러시아를 두차례나 정벌한 뒤 오늘날의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를 공략하고 이탈리아에까지 진출했다. 칭기즈칸의 심복인 제베 장군은 2000명의 기마병으로 동유..

여적 2019.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