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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고노(河野) 부자의 엇갈린 행보

2018.11.07 일본 정치의 ‘55년 체제’는 자유민주당이 1955년에 창당된 것을 기점으로 형성된 양대 정당 체제를 가리킨다. 자민당이 여당, 좌파 사회당이 제1야당을 유지하는 체제가 38년간 이어졌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토록 장기집권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로 전문가들은 자민당 내 다양한 파벌이 경쟁하면서 내각을 교체해온 것이 정권교체와 맞먹는 효과를 냈기 때문으로 본다. 자민당이라는 ‘빅텐트’는 유지하되 중도 혹은 리버럴 정치인들이 전면에 나선 것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샀다는 분석이다. 거물 정치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81)가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중도 색채가 강하고 계파색이 엷어 여러 내각에서 중용됐고, 사상 최장수 중의원 의장을 지냈다. 북한에 쌀 50만t을 지원하고, 중국..

여적 2019.08.04

[여적]보수·진보가 함께하는 통일 대화

2018.11.01 ‘남남(南南)갈등’이란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다방면의 교류협력이 추진되자 보수야당은 ‘대북 퍼주기’와 색깔론으로 공격했다. 국회는 남남갈등의 격전장이었다. 1차 남북정상회담 한 달 뒤인 2000년 7월 당시 김기춘 한나라당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정상회담 때문에 통일지상주의적 논의가 분분하고 주적개념이 흔들리는 등 내부의 이념교육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해 11월에는 같은 당 김용갑 의원이 국가보안법 개정 논의를 제기한 민주당에 대해 ‘조선노동당의 2중대’라고 지목하는 바람에 국회가 파행했다. 보수야당은 진보 정권의 대북정책을 집요하게 공격해 정치적 반사이익을 챙겼다. 남남갈등의 전선은 사회 곳곳으로 확대..

여적 2019.08.04

[여적]메이지유신의 두 얼굴

2018.10.23 시모노세키(下關)는 한·일 국제여객선 부관페리호가 닿는 곳으로 야마구치(山口)현에 속한다. 야마구치현은 에도 막부시대에는 조슈번(長州藩)으로 불렸고, 도쿄의 막부(중앙정부)와 1000㎞나 떨어진 거리만큼 관계도 좋지 않았다. 대신 중국·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조슈번은 국제정세에 민감했고, 번의 영주(다이묘)였던 모리(毛利)가문은 부국강병에 힘썼다. 조슈번은 1863년 막부의 쇄국령을 어겨가며 번의 유망한 청년 5명을 영국 유학까지 보낼 정도로 서양문물 수용에 개방적이었고, 이런 분위기 때문에 개혁 지사들을 대거 배출하는 요람이 됐다. 1860년대 막부 말기의 난세에서 조슈는 가고시마를 근거지로 하는 사쓰마번(薩摩藩)과 함께 정국을 좌우하는 실세로 부상했다. 당초 조슈의 주류는 ‘왕을..

카테고리 없음 2019.08.04

[여적]브렉시트와 북아일랜드

2018.10.18 세계인들의 애창곡 ‘대니 보이’는 북아일랜드의 민요 ‘런던데리의 노래(Londonderry Air)’가 원곡이다. 엘비스 프레슬리, 존 바에즈, 에릭 클랩턴 등 유명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고, 한국에도 ‘아, 목동아’로 번안돼 널리 알려졌다. 처연하고 애상적인 멜로디만큼이나 런던데리는 북아일랜드의 아픈 현대사를 간직한 도시다. 1972년 1월30일 북아일랜드 북서부 런던데리에서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평화행진에 나선 가톨릭계 주민들을 향해 영국군이 무차별 발포해 14명이 죽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이날의 참극은 1960년대 말부터 약 30년에 걸쳐 3500명이 죽고 5만명이 다친 북아일랜드 사태를 대표한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본래 하나의 공동체였지만..

카테고리 없음 2019.08.04

[여적]쓰나미 피해지의 올레길

2018.10.17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지 나흘 뒤인 2011년 3월15일 쓰나미가 공격한 미야기(宮城)현 미나미산리쿠를 찾았다.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변한 거리 곳곳에서 집, 전신주, 차량들이 뒤엉켜 있었다. 어느 집 벽에 걸려 있었을 그림 액자, 이불, 전기밥솥, 전화기가 목조 가옥의 잔해들 사이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가랑비가 흩뿌리는 영하의 날씨 속에 탐지견을 앞세운 구조대원들이 이날 하루 6구를 잔해 속에서 수습했다. 미나미산리쿠 외에도 이시노마키, 나토리 등 해안 지역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게센누마는 지진으로 유류탱크가 넘어지면서 시가지 전역이 불바다가 됐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전체 사망·실종자 1만8434명 중 1만763명이 미야기현에서 나왔다. 미나미산리쿠 취재 도중 잔해물 ..

여적 2019.08.04

[여적]선동열의 해명

2018.10.04 1980년대 후반까지 대학생들이 군사교육을 이수하면 3개월의 병역단축 혜택이 주어졌다. 1학년 때 문무대 등으로 불리는 군사교육기관, 2학년 때는 전방부대에 입소해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학교 교련과목을 낙제하지 않고 이수하면 혜택을 받았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온 사병들은 두 달 먼저 입대한 고졸 고참병보다 한 달 빨리 제대했다. 고졸 사병들의 심사가 편할 리 없었다. 1988년 대학생 군사교육이 폐지될 때까지 대학생 병역혜택이라는 ‘제도적 차별’은 군대 내 상시 갈등요인이었다. 당시는 병역비리도 횡행해 병역면제자는 ‘신의 아들’, 단기사병은 ‘사람의 아들’, 현역입대자는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말이 돌았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병역이슈는 폭발력이 더 커졌고, 공정치 못한..

카테고리 없음 2019.08.04

[경향의 눈]폼페이오의 임무

2018.10.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종전선언에 곧 서명하겠노라고 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로 보인다. 북한 외무성이 지난 7월 성명에서 밝혔고, 미국 언론도 확인해 보도했다. 이 말썽 많은 종전선언의 표류 경위는 북·미 협상 2라운드의 향방을 가늠해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짚어봐야 한다. 올 들어 북한은 미국에 몇 가지 선물을 조건 없이 건넸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억류 미국인 3명 송환, 핵·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같은 것들이다. 비슷한 무게의 조치들을 기계적으로 주고받는, 복잡다단한 상호주의가 신뢰 구축은커녕 불신만 키웠던 실패의 경로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지난 25년간 북·미 협상은 으슥한 공터에서 불신 가득한 눈초리로 상대 패거리들..

칼럼 2019.08.04

[여적]아베의 북 위협 부풀리기

2018.08.28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주민들은 지상전(오키나와 제외)은 면했지만, 미군의 공습에 시달려야 했다. 1945년 3월10일 도쿄대공습으로 8만3793명이 죽고, 4만918명이 다쳤으며 도쿄 동부지역 일대가 괴멸됐다. 심야에 도쿄 상공에 진입한 미군 B-29 폭격기 279대가 38만발의 소이탄과 네이팜탄을 퍼부어 목조가옥이 밀집한 ‘시타마치(下町)’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국제사회에선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의 기억이 강렬하지만 도쿄 주민들에게는 도쿄대공습이 더 원초적인 전쟁기억이다. ‘낯선 것이 공중에서 침입하는’ 공습(空襲)은 일본인들에게 근원적인 공포감으로 자리잡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공습 트라우마’를 되살려 낸 건 북한의 미사일이었다. 1998년 8월31일 발사된 대포동 1호 미..

여적 2019.08.04

[여적]‘질풍노도’ 노인세대

2018.08.23 2007년 60대 어부가 남녀 대학생 4명을 잇따라 살해한 사건은 영화 소재가 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69세의 노인이 자신의 배에 탄 여대생을 상대로 성욕을 채우려고 악마로 돌변했다. 고령임에도 어부 특유의 완력으로 바다 환경에 익숙지 않은 청년들을 잔혹하게 유린해 ‘가해자=청년, 피해자=노인’이란 통념을 바꿔놨다. 이듬해 2008년 2월에는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은 채모씨(70)가 국보 1호 숭례문을 불질러 전소시켰다. 2014년 5월 일어난 전남 장성 요양원 화재와 서울 지하철 3호선 도곡역 방화 사건의 범인도 70~80대 노인이었다. 이제 ‘질풍노도’는 청소년이 아니라 노년세대에 붙여야 할 수식어가 돼버린 건가. 노인범죄의 급증세는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최근 5년간(2012~20..

여적 2019.08.04

[여적]지역한정 사원

2018.07.23 최근 일본의 청년세대는 장기불황 속에서 나고 자라 돈과 출세에 관심이 적다는 특징 때문에 ‘사토리(悟り)세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득도한 수도승처럼 부귀영화와 현실의 명리에 관심을 끊은 듯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대학도 가급적 고향에서 가까운 곳을 희망하고 도쿄유학 열망도 예전만 못하다. 리스크가 큰 대도시 유학·취업보다는 고향에 머물며 가족과 지역 커뮤니티라는 안전망에 의존하는 심리가 강해진 것이다. 당연히 해외근무나 전근은 피하고 싶어한다. 일본 산교노리쓰대학이 2017년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입사 뒤 해외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60.4%로 2001년 20.2%에서 크게 늘었다. 회사의 지시라면 전근도 해외근무..

여적 2019.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