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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북한에는 과거로, 한국에는 미래로 가자는 일본

2019.08.07 일본의 한반도 외교는 이율배반적이다. 한국에는 미래로 가자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과거를 추궁한다. 일본과 북한은 2002년 정상회담에서 과거사를 서로 인정하고 청산한 다음 국교수립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이 취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했고, 피해자 13명 중 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자’는 북·일 평양선언의 취지가 무색하게 납치문제에 집착했고, 일본으로 일시 귀국한 생존자 5명도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납치문제가 복잡하게 꼬인 이유는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의 처지에 설 모처럼의 기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나바시 요이치의 표현을 빌면 이런 처지의 바뀜에서 일본인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듯 하다. ‘우리도 한국이..

칼럼 2019.08.09

[경향의 눈]한·일관계 10년의 회한

2019.07.10 일본은 10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2009년 자민당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쥔 민주당 정권은 동아시아 중시 노선을 들고 나왔다. 요즘도 가끔씩 한국을 찾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한·중·일과 아세안, 인도, 호주, 뉴질랜드가 참가하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내놨다. 간 나오토 총리는 2010년 한일병합 100년 사죄담화를 발표했다. “한국인들 뜻에 반해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냈다. (중략)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심정을 표명한다.” 백여년전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부르짖으며 동아시아를 뛰쳐나갔던 일본이 이웃나라들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전후(戰後)질서가 균열하던 1990년대부터였다. 미·소냉전이 ..

칼럼 2019.08.09

[경향의 눈]우리는 김원봉을 얼마나 알고 있나

2019.06.12 오스트리아는 나치의 독일제국에 합병된 상태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패전국이 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4개 연합국의 분할통치를 받게 됐다. 38선 남북을 미·소가 분할 점령했던 한반도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연합국의 군사정부와 오스트리아 임시정부가 공존했다는 점이 달랐다. 패전 직전 노(老)정객 카를 레너가 친나치 계열을 뺀 모든 정파를 아우른 임시정부를 세운 것이다. 소련을 제외한 3개 연합국은 사회주의 정치가 레너가 주도하는 임시정부를 경계했으나 얼마 안 가 승인했고, 임시정부는 오스트리아 전역에 관할권을 행사하게 됐다. 그해 11월 총선에서 50%를 득표해 제1당이 된 보수계 국민당은 단독정부 수립 대신 사회당, 공산당과 ‘대연정’을 구성했다. 분단 위기를 딛고 통일..

칼럼 2019.08.09

[경향의 눈]북·일 정상 못 만날 까닭 없다

2019.05.15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던 2002년 9월17일 동북아는 난기류에 휩싸여 있었다. 그해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이자 “선제공격으로 정권을 교체시켜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다. 부시 행정부의 등장 이후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도 탄력을 잃었다. 그해 4월 평양에 특사로 간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면서 소강상태이던 남북관계가 풀렸지만,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북한을 궁지에 몰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이런 시점에서 미국의 맹방인 일본 총리의 방북은 ‘일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사정 탓인지 고이즈미 총리는 최대한 건조하게 회담에 임했다. 당일치기로 방문한..

칼럼 2019.08.09

[여적]야마모토 다로의 정치실험

2019.07.24 지난 21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은 아베 신조 총리가 아니라 배우 출신 정치인 야마모토 다로(45)일 것이다. 그가 결성한 정치단체 ‘레이와 신센구미’는 이번 선거에서 비례대표 2석을 획득했고, 득표율 2%를 넘기면서 정당요건을 충족했다. 비례 1번에 루게릭병 환자인 후나고 야스히코, 비례대표 2번으로 중증장애인 기무라 에이코를 당선시켰다. 비례 3번으로 입후보한 야마모토는 무려 99만표의 전국 최다 득표를 하고도 낙선했지만 ‘레이와 신센구미’가 정식 정당이 된 만큼 당대표 자격으로 정치활동을 이어가게 됐다. 선거기간 중 ‘레이와’는 태풍의 눈이었다. 편의점 점주, 싱글맘, 도쿄대 교수 등 다양한 인물들이 비례대표로 나서 빈곤·차별·탈원전·안보·경제 등 분야에..

여적 2019.08.09

[여적]일본 참의원 선거(2019.7.16)

일본 국회는 상원인 참의원(參議院)과 하원인 중의원(衆議院)으로 구성된다. 참의원은 근대화 초기인 메이지 시대 왕족, 화족 등으로 구성된 귀족원이 뿌리다. 일본 정부는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귀족원을 ‘특의원(特議院)’으로 바꾸고 보통선거가 아닌 방식으로 선출하려고 했으나 미군정청의 반대로 보통선거로 선출되는 참의원으로 결정됐다. 참의원은 의원 임기가 6년이고, 3년마다 절반(121명)씩 교체되는 데다 중의원과 달리 내각총리가 해산할 수 없다. 또 중의원이 가결한 법안이나 조약 등을 참의원이 다시 심의하는 만큼 논란의 여지가 있는 법안에 깊이 있는 검토가 이뤄진다.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이 중의원에서 재가결되려면 출석의원의 3분의 2 찬성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런 참의원의 권능과 특징은 정책의 ..

여적 2019.08.09

[여적]미국 대통령의 DMZ 방문(2019.6.24)

한국전쟁은 미국이 이기지 못한 ‘불명예스러운 전쟁’이자 ‘잊혀진 전쟁’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년 뒤 극동의 조그만 반도에서 벌어진 국지전인 데다, 베트남전처럼 전쟁을 성찰할 계기를 제공하지도 못했다. 전쟁 1년 만에 전선이 고착된 뒤에는 소모전을 되풀이하다 멈춰 드라마틱한 요소도 부족했다. 보통의 미국인들이 야전병원을 무대로 한 시트콤 를 통해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저술가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는 (1963)에서 미국은 당시 며칠 혹은 몇달 안에 끝날 분쟁 정도로 여기고 참전했다가 수렁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준비 안된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미국과 한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며 동맹이 됐고, 한때 미국의 극동 방어선에서 제외됐던 한국은 자유진영의 최전선이 됐..

여적 2019.08.09

[여적]대북소식통(2019.6.4)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에게 단서를 제공한 소식통은 ‘딥 스로트’로 불렸다. 우드워드 기자가 빨간 깃발이 있는 꽃화분을 자신의 아파트 발코니 뒤편으로 옮겨 ‘만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면 딥 스로트는 그의 아파트로 배달되는 신문에 시계를 그려 넣어 응답했다. 30여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이 소식통은 미 연방수사국(FBI) 간부인 윌리엄 마크 펠트(1913~2008)였다. ‘소식통’들은 한국에서는 북한 관련 보도에 자주 등장한다. 대북소식통에는 국가정보원, 외교안보 부처 고위인사, 북한이탈주민, 대북사업가, 주한 외교관, 북한현지 주민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북한체제 특성상 다른 분야보다도 더 취재원 보호가 필요한 만큼 불가피하게 ‘대북소식통’으로 얼버무려야 할 ..

여적 2019.08.09

[여적]미국과 중국의 ‘콩 전쟁’(2019.5.30)

중국인들의 돼지고기 사랑은 유별나다. 돼지고기 요리가 1500종이 넘을 정도다. 송나라 문인 소동파가 만들었다는 둥포러우(東坡肉)는 양념한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긴 뒤 술, 파, 간장 등을 넣고 졸여낸 요리다. 중국식 삼겹살 조림인 훙사오러우(紅燒肉)는 마오쩌둥이 즐기던 요리로 유명하다. 한국의 족발요리와 흡사한 바이윈주서우(白雲猪手)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인기다. 돼지사육에는 콩(대두)이 필수다. 콩에서 기름을 짠 뒤 남은 콩깻묵이 사료가 된다. 콩은 두부, 콩국, 간장 등의 재료일 뿐 아니라 튀기고 볶는 요리가 많은 중국 요리에 기름으로도 요긴하다. 식생활에 필수적인 만큼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물가 급등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걸 보면 콩은 ‘정치적 작물’..

여적 2019.08.09

[여적]밀크셰이킹(2019.5.28)

1991년 6월3일 한국외국어대 캠퍼스에 총학생회의 교내방송이 울렸다. “학우 여러분, 전교조 선생님들을 학살한 정원식이 지금 학교에 있습니다.” 국무총리 서리에 지명된 정원식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은 이날 외대 대학원에서 예정된 마지막 강의를 하던 중이었다. 그는 강의를 서둘러 마치고 학교를 빠져나가려 했지만, 흥분한 학생들이 에워싼 채 계란과 밀가루를 퍼부으며 폭행했다. 얼굴과 전신이 밀가루 범벅이 된 정 총리의 흉한 몰골이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그해 4월 명지대생 강경대가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고,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시위현장에서 압사당했다. 공안정국에 저항하던 대학생들이 잇따라 희생되면서 정권 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잇따랐다. 그런 와중에 장관 시절 전교조를 불법화한 정원식을..

여적 2019.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