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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폼페이오의 임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종전선언에 곧 서명하겠노라고 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로 보인다. 북한 외무성이 지난 7월 성명에서 밝혔고, 미국 언론도 확인해 보도했다. 이 말썽 많은 종전선언의 표류 경위는 북·미 협상 2라운드의 향방을 가늠해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짚어봐야 한다. 올 들어 북한은 미국에 몇 가지 선물을 조건 없이 건넸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억류 미국인 3명 송환, 핵·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같은 것들이다. 비슷한 무게의 조치들을 기계적으로 주고받는, 복잡다단한 상호주의가 신뢰 구축은커녕 불신만 키웠던 실패의 경로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지난 25년간 북·미 협상은 으슥한 공터에서 불신 가득한 눈초리로 상대 패거리들을 노려보면서 마약과..

카테고리 없음 2018.11.05

[미야기 올레] 7년전 그곳을 걷다

일본 미야기(宮城)현은 나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일본 특파원 근무를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동일본 대지진을 겪었고, 그 사흘 뒤 쓰나미 피해현장을 취재하러 렌터카를 몰고 센다이(仙台)까지 갔다. 센다이는 간선도로인 국도 4호선에 건물잔해와 쓰나미로 떠밀려온 차량들이 뒤엉켜 통행이 불가능했다. 원래 이와테(岩手)현에 가려고 했지만 더이상의 북상은 포기해야 했다. 택시를 잡아 미나미산리쿠초(南三陸町)의 피해 현장에 접근해 취재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후쿠시마를 포함해 도호쿠(東北)으로 불리는 미야기, 이와테현을 특파원 재임기간중 7번 찾았다. 살아남은 이들의 생활은 고달팠다. 보금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비좁은 가설주택에서 고역의 일상을 보냈다. 마을 커뮤니티를 잃은 노인들은 가설주택 삶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여행의 맛 2018.10.20

[경향의 눈] 동맹을 다시 생각한다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의 여운이 남은 지난 7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통일에 대한 20대 응답자의 찬성의견이 지난해 38.8%에서 73.3%로 배나 올랐다(서울신문 7월18일자). 20대는 지난해 조사에서 찬성보다 반대가 많은 유일한 연령대였고, 80%가량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결성을 반대했다. 북·미 후속협상이 교착되기 전의 호시절이라 해도 청년들의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로까지 호전된 것은 예상 밖이었다. 까칠하던 청년들의 마음이 움직인 데는 남북관계 발전이 팍팍한 ‘헬조선’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작용했을 것 같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쪽 땅을 밟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엄지를 세우는 초현실적 광경들을 지켜보면서 ..

칼럼 2018.09.11

여름 고시엔 가나아시 농고의 준우승을 보며

오늘의 단어는 東北이다. 일본어로는 도호쿠. 어제 끝난 여름 고시엔에서 도호쿠 지역 아키타현의 가나아시농고(金足農高)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고시엔이 1915년 생긴 이래 아키타현 고교가 결승에 진출한 건 103년만이라고 한다. 오사카의 강호 토인고에게 13-2로 대패하면서 우승은 놓쳤지만 선수층도 빈약한 이 시골고교의 선전에 아키타현은 물론 도호쿠 지방 전체가 열광의 도가니에 휩싸여 있다.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으로 도호쿠 전체가 쑥밭이 됐을 당시 도호쿠를 몇차례 취재하면서 짠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 이후 '도호쿠'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아릿한 느낌이 든다.도호쿠 사람들은 '가만즈요이'(我慢強い), 즉 참을성이 많고 내색도 잘 안한다. 도호쿠 주민들은 묵묵히 수도권에 배후지 역할을 해왔다. 일본..

일본의 오늘 2018.08.22

[영화]카운터스

에무시네마란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밥 먹으러 자주 다니는 신문로파출소 뒤편 골목이다.(참고로 에무는 에라스무스의 약자다) 를 상영하는 곳을 찾다보니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에무시네마였다. 공연장도 있고 영화관도 있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50석 남짓 돼 보이는 초미니 영화관이다. 객석을 다 채우리라곤 생각도 안했지만, 혹시나 혼자 보게 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그래도 5명이나 됐다. 영화는 일본의 헤이트스피치, 혐한시위에 힘으로 맞서는 카운터스의 활약에 관한 이야기다. 팔뚝에 문신을 새긴 전직 야쿠자 다카하시와 기모토 등이 혐한 시위대에 몸으로 부딪혀 저지한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시바키타이(しばき隊)라고 불리는데 '두들겨패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특히 몸으로 부딪히는 '오토코구미(男組)'의 활약이..

읽은거 본거 2018.08.18

[경향의 눈] 폐곡선에 갇힌 북·미관계

북·미 협상 25년 역사는 동일한 패턴의 지겨운 반복 과정이었다. 협상이 타결되고 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될 때쯤이면 북한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돌출하거나, 미국이 합의에서 벗어난 요구를 하며 북한을 자극한다. 북한이 반발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북·미관계가 다시 얼어붙는다. 폐곡선(閉曲線)궤도를 벗어날 수 없는 장난감 기차처럼 북·미관계는 수십년째 같은 경로를 뱅뱅 돌고 있다. 1992년 1월 한·미 양국이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하기로 하자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 체결은 한반도 국면을 바꿀 만한 중대 결정이었다. 그러자 ‘북한이 핵무기 1~2기를 만들 수 있는 10㎏ 안팎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는 추정을 미국 CIA가 들고 나왔다..

칼럼 2018.08.16

[경향의 눈] 예멘 난민 사태가 일깨운 것들

예멘 난민 문제는 사실 답이 정해져 있다. 한국은 유엔난민협약 가입국이자 국내법으로 난민법을 제정한 나라이니 그에 걸맞은 조치를 취하면 된다. 난민신청자가 오면 엄격한 심사를 거쳐 난민지위를 부여할지를 가리면 그만이다. 정부는 올 들어 예멘에서 난민신청자가 몰리자 무사증 입국대상 국가에서 예멘을 제외했다. 어느 나라든 특정 국가 난민이 몰리면 ‘입국 밸브’를 일시적으로 잠그는 것은 상례다. 하지만 공항이나 항구에 입국한 난민을 내쫓는 협약 가입국은 없다. 유독 예멘 난민 문제에 관해서는 이런 공식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난민 기사에 붙은 댓글들을 보면 난민 옹호론은 찾기 어렵다. 댓글 시스템 등장 이래 기사와 댓글이 이번처럼 대척점에 서 있는 경우도 유례없는 일이다. 댓글들로만 보면 예전 북한 ..

칼럼 2018.07.11

[경향의 눈] 김정은의 마지막 고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지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머릿속은 복잡할 것이다. 70년 적대관계이던 미국의 정상과 운명을 건 거래를 해야 하는 중압감이 짓누르고 있을 것이다. 임박한 협상의 성공 여부도 그렇지만, ‘트럼프 이후의 미국 정부가 합의를 지킬 것인가’에까지 고민이 뻗쳐 있을 것이다. 리비아나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갈 것 없이 3년 만에 파기된 ‘이란 핵합의’를 봐도 김정은 위원장의 고민을 헤아려 볼 수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7월14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독일·유럽연합(EU)과 함께 이란이 핵 활동을 제한하면 제재를 푸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이란과 합의했다. 이후 이란은 원심분리기 감축, 저농축 우라늄 해외반출 등 합의를 이행했..

칼럼 2018.07.04

[경향의 눈] 탈북인들의 귀향

영화 에서 북한 교향악단의 호른 연주자인 선호는 결혼을 약속한 연화를 두고 가족과 함께 탈북한다. 서울에 내려온 뒤 각고 끝에 연화의 탈북자금을 마련하지만 브로커에게 돈을 몽땅 빼앗겨 버린다. 어려울 때 곁을 지켜준 남쪽 여성 경주와 가정을 꾸리며 생활에 적응할 무렵 연화가 내려오며 비극은 정점으로 치닫는다. 2006년 개봉된 영화지만 선호와 연화가 어쩔 수 없이 이별하는 막바지 장면에선 여전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느덧 3만명에 이르는 탈북인들 중에는 이보다 몇 배나 큰 설움을 안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량 탈북 사태는 최악의 식량난이 북한을 덮친 1990년대 중후반 본격화됐다. 처음엔 식량을 구해올 요량으로 강을 건너던 것이 북·중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목숨을 건 탈출이 돼버렸고, ..

칼럼 2018.05.11

[경향의 눈] 재미있는 남북관계

올 들어 재개된 남북교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이 마주친 장면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연을 참관한 뒤 레드벨벳 멤버들과 차례로 악수하더니 아이린과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한 장면이 워낙 초현실적이다 보니 소셜미디어 공간에선 각종 ‘드립’들이 만발했다. 팬심 가득한 김정은이 아이린과 인증샷까지 찍었으니 ‘성덕(성공한 덕후)’이 됐고, 아이린은 ‘대북 억지력의 정점’에 올랐다는 따위들이다. “내가 레드벨벳을 보러 올지 관심들이 많았는데(후략)” “같은 동포인데 레드벨벳을 왜 모르겠느냐”는 말에 ‘덕후’임을 확신한 이들이 ‘김정은이 레드벨벳을 한 번 더 보려고 멤버 조이를 일부러 불참시켰다’는 음모론을 만들어 퍼뜨리기도 했다. 대륙간탄도..

칼럼 2018.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