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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북한의 사과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빠른 속도로 복구와 재건에 성공했고, 1960년대에는 상당한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확립된 주체사상은 1990년대 경제난 심화로 위세를 잃었지만 여전히 북한의 유일지배 체제를 떠받치는 이념이다. 주체사상의 핵심 중 하나는 ‘수령은 오류가 없으므로 그의 교시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수령론이다. 천황을 ‘아라히토가미(現人神·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난 신)’라며 숭배하던 일본 군국주의 사상과 판박이다. 그런 북한에서 지배층이 고개를 숙이는 이변이 생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월1일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영된 육성 신년사에서 자신의 ‘능력부족’을 자책했다. 김정은은 “언제나 늘 마음 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여적 2018.04.04

[여적] 1호 열차

북한 최고위층이 26일 중국 베이징을 특별열차로 방문한 동향이 포착됐다. 녹색바탕에 노란색 선이 그어진 차량의 외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 중국·러시아 방문시 타던 열차와 흡사하다. 김정일 위원장은 항공편을 기피해 해외방문 시에는 ‘1호 열차’ 혹은 ‘태양호’로 불리는 전용 특별열차를 이용했다. 열차에는 김정일의 측근, 촬영기사, 요리사, 의사, 호위병력이 동승한다. 보통은 17량이지만 방문목적과 동승인사에 따라 26량으로 편성될 때도 있다. 2001년 7~8월 김정일의 방러를 수행한 콘스탄틴 풀리코스프키 러시아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대표는 위성으로 열차의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스크린과 영화감상용 스크린 등이 객차에 설치돼 있고 컴퓨터와 노래방 기기도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특별열차 운행시에는 북한은..

여적 2018.04.04

[여적] 붉은 완장

윤흥길의 소설 에서 땅투기로 돈을 번 최사장은 마을 저수지의 사용권을 따내 양어장을 만든 뒤 마을 한량 임종술에게 감시역을 맡긴다. 임종술은 노란 바탕에 ‘감독’이라는 파란 글씨를 새긴 비닐 완장을 찬 뒤부터 안하무인이 돼 마을 사람들에게 쥐꼬리만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팔에 두르는 완장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압제와 학정, 공포통치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본군 헌병들이 흰 천에 ‘憲兵(헌병)’을 붉은 글씨로 새긴 완장을 차고 ‘불령선인’들을 색출했다. 다음달 3일로 70년을 맞는 제주 4.3 당시 사진기록을 보면 한 학교 운동장에서 팔에 완장을 두른 정부측 심문반원이 주민들중 유격대 협력자를 가려내는 장면이 있다. 완장찬 이의 마음먹기에 따라 생사가 갈렸..

여적 2018.04.04

[여적] 시진핑 사회주의

중국 공산당은 이념 학습 과정에서, 중요도에 따라 ‘주의’ ‘사상’ ‘이론’ ‘관’ ‘론’이라는 말을 뒤에 붙인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마오쩌둥 ‘사상’이고 덩샤오핑 ‘이론’이 뒤를 잇는다. 그런데 지난 1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99.8%의 찬성으로 통과된 개헌안에서 ‘시진핑 새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이 헌법 서문에 포함됐다. ‘시진핑 사상’이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경제적 도약을 이끌었던 덩샤오핑을 제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한 마오쩌둥의 사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중국특색 사회주의’는 먼저 자본주의에 성공한 다음에 공산주의를 실현하자는 사상으로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위해 제창했다. 사회주의 국가가 되긴 했지만 생산력이 낙후돼 진정한..

여적 2018.04.04

[여적] 리설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가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첫해인 2012년 7월6일이다. ‘북한판 소녀시대’로 불리는 모란봉악단 밴드의 시범공연이 열린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리설주는 김정은 위원장의 옆자리에 앉아 공연을 지켜봤다. 모란봉악단의 파격적인 무대도 그랬지만 이 정체모를 여성에 대해서도 전세계의 관심이 쏠렸다. 리설주는 이틀 뒤인 7월8일 김정은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7월15일 창천거리 경사유치원 방문에 잇따라 동행했다. 이어 북한 매체들이 7월25일 김정은의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 참석을 전하면서 “김정은 원수가 부인 리설주 동지와 함께 준공식장에 나왔다”고 밝힘으로써 정체가 확인됐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식석상에 부인을 동반한 ..

여적 2018.04.04

[여적] 칼 아이칸

담배·인삼 제조기업인 KT&G의 주주총회가 열리던 2006년 3월17일 대전 대덕구의 KT&G 인력개발원 강당은 아침부터 긴장감에 휩싸였다. 보안요원들이 대거 배치됐고, 노조원들의 피켓시위도 벌어졌다. AP, 로이터, 블룸버그 등 외신들이 대거 출동해 세계적인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Carl Celian Icahn·82)의 한국 진출을 취재했다. 주총에서 아이칸 측이 사외이사 1명을 당선시켜 이사회 입성에 성공하자 국내 기업들은 전율했다. 아이칸은 한해 전인 2005년 9월부터 KT&G 지분 5.69%를 매입한 뒤 경영진에게 보유자산 처분과 배당확대 등을 요구했다. 10개월간의 분쟁 끝에 아이칸은 주식 700만주를 매각해 44%의 주가수익률에 배당금 등을 합해 1500억원의 차익을 챙겨 떠났다. 칼 아이칸..

여적 2018.04.04

[여적] 후쿠시마 제염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방사성물질이 대량으로 유출된 이후 일본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제염(除染)’, 즉 방사성물질 제거 작업에 착수했다. 사고가 난지 2년 뒤인 2013년 후쿠시마 원전에서 반경 20~30㎞ 거리인 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廣野町)의 제염작업 현장을 취재한 적이 있다. 방진마스크를 쓴 헬멧 차림의 작업원들이 농가의 밭 표면에서 일정 두께로 흙을 긁어낸 뒤 나뭇가지, 지푸라기 등과 함께 비닐포대에 부지런히 담고 있었다. 민가의 제염작업은 더 복잡하다. 물에 적신 종이수건으로 지붕의 기와를 한장 한장 닦아내고, 고압살수기로 빗물관 내부를 청소한다. 가옥 1채를 제염하는 데 1000만원 안팎의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주된 제염대상은 핵분열 물질인 세슘-137로 감마선을 ..

여적 2018.04.04

[경향의 눈] '북풍'을 잃어버린 아베

3월 한반도에 화해의 훈풍이 불기 시작했지만 봄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두 집단이 있다. 자유한국당과 일본 아베 정권이다. 자유한국당도 딱하지만 아베 정권도 낭패한 기색이 역력하다. 서훈 국정원장이 아베 신조 총리와 만나 방북·방미 결과를 설명하던 13일 일본 주요 일간지의 중견간부에게 전화로 물어봤다. - 지금 아베 정권은 어떤 분위기인가. “‘내우외환’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아베 정권은 사학스캔들이 다시 불거지면서 궁지에 몰려있다)” - 일본은 북한의 태도변화에 가장 당황하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본이 대북압박에 가장 목소리를 높였으니. 아베 정권은 북·미 정상회담이 사전협의 단계에서 엎어지길 내심 바랄지 모른다.” - 일본도 미국처럼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면 되지 않나. “이제 ..

칼럼 2018.04.04

방탄백팩

지금은 회사원들도 백팩을 메고 출근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백팩은 주로 등산용이나 여행용이었다. 1980년대 중반 대학가에서 학생운동이 본격화되던 무렵 백팩 차림의 대학생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당시엔 얇은 천으로 만든 꾸러미에 목을 죄는 끈이 달린 신발주머니 같은 ‘원시적’ 백팩도 있었는데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학교 강의를 제대로 듣지 않았으니 책 한두 권 넣을 정도의 용량이면 충분한 데다 기동력이 있어 편리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학생, 회사원은 물론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 대기업 총수들도 메고 다닐 정도로 백팩이 대중화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초등학생용 란도셀 같은 큼지막한 백팩에 자료와 책은 물론 치약·칫솔, 물티슈, 휴지 같은 비상용..

여적 2018.02.27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대결과 우정

보는 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따스하게 해준 한·일전이 또 있었을까. 18일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이상화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小平奈緖)와 다정하게 포옹하며 격려하는 모습은 올림픽 정신을 일깨우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36초94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고다이라는 2위로 경기를 끝낸 뒤 눈물을 쏟아내던 이상화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잘했다. 여전히 너를 존경한다”고 위로했다. 둘은 어깨동무를 한 채 각자의 국기를 흔들며 트랙을 돌았고, 관중들은 박수와 환호로 격려했다. ‘승패를 떠나’라는 관용구가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주니어 선수 때부터 함께 겨루면서 우정을 쌓아왔다. 늘 긴장을 놓지 않고 도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준 라이벌이자 친구였다. ..

여적 2018.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