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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쿠바의 역성혁명

2018.04.22 카스트로 형제는 1959년 혁명으로 바티스타 친미 정권을 무너뜨린 뒤 59년간 쿠바를 통치해왔다. 2006년 건강이 악화된 형 피델 카스트로부터 실권을 넘겨받은 동생 라울(87)도 형 못지않은 쿠바혁명의 주역이었다. 라울은 정통파 공산주의자로 형 피델에게 체 게바라를 소개했으며 본래 민족주의자였던 피델을 친소 공산주의 노선으로 이끌었다. 카스트로 형제는 사회주의 체제가 특장으로 내세우는 무상의료·교육과 식량배급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1962년 도입된 배급제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수십년간의 일당 독재체제에서 우상화를 금지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요절한 혁명동지인 체 게바라의 경우 아바나 정부 청사에 큼직하게 설치된 대형 조형물을 비롯해 기념물이 적지 않지만 카스트로 형제의 동상이나 ..

카테고리 없음 2019.08.03

[여적]댓글 자영업자

2018.04.17 1987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여의도 광장에 100만명의 군중을 동원해 대규모 유세를 펼쳤다. 자발적 지지자들만으로는 광장을 채울 수 없어 각종 직능단체나 향우회, 동창회 등을 동원하는 조직책이나 선거브로커가 필요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군중 동원 대신 온라인 공간의 평판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이는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제품을 구매하거나 식당을 예약하기 전에 인터넷 검색이 보편화되면서 사업자들의 온라인 평판을 관리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런 수요 기반 위에서 ‘사이버 평판 마케팅’이라는 신종 사업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예가 바이럴(viral) 마케팅이다. 블로그나 소셜미디어, 인터넷 카페 등에 글을 올려 제품이나 식당에 대한 ‘입소문’을 퍼뜨..

여적 2019.08.03

[여적]폴 라이언의 은퇴

2018.04.12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즉 가족의 많은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총리직 수행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었습니다.” 2016년 12월5일 뉴질랜드 국회 주례 기자회견에서 존 키 총리(당시 55세)가 총리직 사임을 전격 발표했다. 키 총리는 “얼마 전 총리 취임 8주년 기념일을 보냈고, 국민당 대표로서도 10년을 채웠다”며 “지금이 물러나기에 적기”라고 했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에 적절히 대처해 호평을 받아온 그가 사임이유로 가족의 희생을 꼽은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두 살 연하인 아내 브로나가 많은 밤과 주말을 홀로 보냈으며, 두 자녀도 사생활이 침해되고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브로나가 “나와 총리직 중 택일을 하라”며 최후통첩을 했다는 ..

여적 2019.08.03

[경향의 눈] 불가역적인 남북관계의 요건

서울에 거주하는 네덜란드 청년이 지난 연말연시에 북한여행을 다녀온 뒤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렸다. 베이징에서 단둥을 통해 열차편으로 방북한 청년은 2018년 제야(除夜) 10만명이 참가한 김일성광장 설맞이 축하행사에서 불꽃놀이, 드론쇼와 축하공연을 북한 주민들과 함께 즐겼다. 남포, 사리원, 판문점 북측지역도 참관했다. 국내 한 방송사는 그의 방북영상을 토대로 한 다큐멘터리를 이달 초 방영했다. 지난 7일 평양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는 40여개국에서 참가한 1000여명이 시민들의 격려를 받으며 평양거리를 달렸다. 한 일본인 참가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가까우면서 먼 나라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일본 방송들은 평양시내에 늘어나고 있는 전동자전거와 태양광 패널을 소개했다. 아베 정부의 대북 강경정..

칼럼 2019.04.30

[경향의 눈] 개성공단 '희망고문 2년'

개성공단에 진출했던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 대화연료펌프는 정부가 2011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지정할 정도로 탄탄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 이후 3년간 경영이 악화됐고, 수억원대 자금을 결제하지 못해 최근 부도처리됐다. 개성공단에서 의류공장을 운영했던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 정기섭 공동위원장도 국내 공장 두 곳을 접었다. “개성에서 번 돈으로 국내 공장 두 곳의 결손을 메워왔는데 개성공단 중단이 길어지면서 견디기 힘들었다.” 공단 폐쇄 3년을 넘기면서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버틸 힘이 바닥났다. 은행대출은 일찌감치 막혀 사채를 끌어다 쓰며 버티는 기업들도 적지 않고, 부도위기에 몰린 곳도 10여곳에 이른다. 사실상 폐업상태지만 남북협력사업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사무실만 유지하며 휴업 중인 곳도..

칼럼 2019.04.30

[경향의 눈]아키히토 일왕이 방한한다면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최대 격전지였던 오키나와는 일본의 패전 이후 미군정의 지배를 받다가 1972년 5월에야 일본에 반환됐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75년 7월 아키히토(明仁) 왕세자 부부가 와병 중인 부친 히로히토(裕仁) 일왕을 대신해 국제해양박람회 참석하기 위해 오키나와 땅을 밟았다. 전쟁 당시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되거나 집단자살을 강요당하면서 10만명 가까이 희생됐다.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 정부와 전쟁의 최종책임자인 왕실에 대한 주민들의 원한은 채 가라앉지 않았다. 오키나와해방동맹준비위원회(오해동)를 비롯한 운동단체들은 한 달 전부터 ‘방문저지’를 외치며 별렀다. 왕세자 부부가 오키나와에 도착한 7월17일, 나하(那覇) 등 도심에서 수만명이 시한부 파업과 항의시위를 벌..

칼럼 2019.04.30

[경향의 눈]총력전체제 100년의 청산

지난 100여년의 한·일관계 혹은 일본과 한반도 전체를 아울러 볼 키워드로 ‘총력전체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국가의 전 분야를 동원해 총력을 기울여 하는 전쟁이 총력전이고, 이에 맞춰 국가와 사회 전 부문을 재편성한 것이 총력전체제다. 일본이 한일병합을 거쳐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위한 총력전체제에 돌입하는 과정에서 고안해낸 각종 제도는 한반도에 두고두고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1910년 퇴역군인의 전국조직인 재향군인회를 창설해 후방자원의 동원체제를 확립하는 한편 1924년 학교에 교련제도를 도입했다. 1925년에는 반정부·반체제운동을 억압하기 위한 치안유지법을 시행했고, 중일전쟁이 발발하던 1937년에는 내각에 기획원을 설치했다. 기획원은 전시에 모든 물적·인적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제정한 국가총..

칼럼 2019.01.29

[경향의 눈] 우리는 서독만큼 매력적인가

예멘 난민 문제는 한국 사회의 협량을 확인하는 좋은 본보기가 됐다.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이 지난 14일 예멘 난민 신청자 중 2명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했다는 뉴스에 붙은 댓글들이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를 빼앗길 수는 없다”, “분단에 휴전국인 나라에서 무슨 난민이냐”, “자국민 살기 힘들어 죽어나가는 건 남의 일인 양 보면서…”. 제주 예멘인 난민신청자(484명)의 난민 인정률이 0.4%에 불과하다는 건 ‘그러거나 말거나’다. ‘포용력 부족’ 정도로 넘길 문제는 아니다. 난민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다보면 공동수도와 화장실을 쓰느라 비좁은 골목길에서 악다구니가 오가는 피란민촌의 아침 풍경이 떠오른다. 경제 볼륨은 세계 10위권으로 커졌지만, 사회의 심리상태는 전쟁통 난민촌에 가깝다. 간신히 맞춰놓은 삶..

칼럼 2019.01.18

[경향의 눈] 김정은 위원장이 걸어온 1년

“친애하는 여러분, 우리 앞길에는 탄탄대로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 못했던 도전과 난관, 시련도 막아나설 수 있습니다.”9·19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표출한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는 장기 교착상태에 빠졌다. 북한이 여러 차례 비핵화 의지를 피력해왔지만 미국은 대북 압박의 고삐를 놓지 않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미국은 지난 25년간의 낡은 대북 접근법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표정만 부드러워졌을 뿐이다. 요즘 김정은 위원장의 머릿속은 ‘미국이 정말로 북한과 관계개선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차 있을 것이다. 최근 북·미대화에 응하지 않는 것은 이런 회의감 때문일 수도 있다..

칼럼 2018.12.05

[경향의 눈] 한반도 대전환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이들에게

올 들어 남북관계가 복원된 이후 정상회담만 세 차례 열렸고, 문화·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전개돼 왔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무기가 사라졌고, 65년 만에 비무장지대에서 전쟁 유해의 발굴이 시작됐다. 이달 말이면 전방 감시초소들도 시범철수된다. 다기한 분야에서 남북관계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다 보니 ‘우리가 어디쯤 와 있고, 왜 여기에 있는지’ 현기증이 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 기사에 냉소 섞인 댓글들이 달리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어 보인다. 어떤 변화든 거저 일어나지는 않는다. 운동을 하려고 안 쓰던 근육을 오랜만에 쓰려면 통증이 생기는 것과 같다. 하물며 70년 냉전체제의 껍질을 깨기가 쉬운 일인가. 우리 시야도 정세변화에 맞춰 바꾸지 않으면 초점이 안 맞아 어지럼증이 심해진다. ..

칼럼 2018.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