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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메이지유신의 두 얼굴

2018.10.23 시모노세키(下關)는 한·일 국제여객선 부관페리호가 닿는 곳으로 야마구치(山口)현에 속한다. 야마구치현은 에도 막부시대에는 조슈번(長州藩)으로 불렸고, 도쿄의 막부(중앙정부)와 1000㎞나 떨어진 거리만큼 관계도 좋지 않았다. 대신 중국·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조슈번은 국제정세에 민감했고, 번의 영주(다이묘)였던 모리(毛利)가문은 부국강병에 힘썼다. 조슈번은 1863년 막부의 쇄국령을 어겨가며 번의 유망한 청년 5명을 영국 유학까지 보낼 정도로 서양문물 수용에 개방적이었고, 이런 분위기 때문에 개혁 지사들을 대거 배출하는 요람이 됐다. 1860년대 막부 말기의 난세에서 조슈는 가고시마를 근거지로 하는 사쓰마번(薩摩藩)과 함께 정국을 좌우하는 실세로 부상했다. 당초 조슈의 주류는 ‘왕을..

카테고리 없음 2019.08.04

[여적]브렉시트와 북아일랜드

2018.10.18 세계인들의 애창곡 ‘대니 보이’는 북아일랜드의 민요 ‘런던데리의 노래(Londonderry Air)’가 원곡이다. 엘비스 프레슬리, 존 바에즈, 에릭 클랩턴 등 유명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고, 한국에도 ‘아, 목동아’로 번안돼 널리 알려졌다. 처연하고 애상적인 멜로디만큼이나 런던데리는 북아일랜드의 아픈 현대사를 간직한 도시다. 1972년 1월30일 북아일랜드 북서부 런던데리에서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평화행진에 나선 가톨릭계 주민들을 향해 영국군이 무차별 발포해 14명이 죽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이날의 참극은 1960년대 말부터 약 30년에 걸쳐 3500명이 죽고 5만명이 다친 북아일랜드 사태를 대표한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본래 하나의 공동체였지만..

카테고리 없음 2019.08.04

[여적]쓰나미 피해지의 올레길

2018.10.17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지 나흘 뒤인 2011년 3월15일 쓰나미가 공격한 미야기(宮城)현 미나미산리쿠를 찾았다.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변한 거리 곳곳에서 집, 전신주, 차량들이 뒤엉켜 있었다. 어느 집 벽에 걸려 있었을 그림 액자, 이불, 전기밥솥, 전화기가 목조 가옥의 잔해들 사이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가랑비가 흩뿌리는 영하의 날씨 속에 탐지견을 앞세운 구조대원들이 이날 하루 6구를 잔해 속에서 수습했다. 미나미산리쿠 외에도 이시노마키, 나토리 등 해안 지역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게센누마는 지진으로 유류탱크가 넘어지면서 시가지 전역이 불바다가 됐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전체 사망·실종자 1만8434명 중 1만763명이 미야기현에서 나왔다. 미나미산리쿠 취재 도중 잔해물 ..

여적 2019.08.04

[여적]선동열의 해명

2018.10.04 1980년대 후반까지 대학생들이 군사교육을 이수하면 3개월의 병역단축 혜택이 주어졌다. 1학년 때 문무대 등으로 불리는 군사교육기관, 2학년 때는 전방부대에 입소해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학교 교련과목을 낙제하지 않고 이수하면 혜택을 받았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온 사병들은 두 달 먼저 입대한 고졸 고참병보다 한 달 빨리 제대했다. 고졸 사병들의 심사가 편할 리 없었다. 1988년 대학생 군사교육이 폐지될 때까지 대학생 병역혜택이라는 ‘제도적 차별’은 군대 내 상시 갈등요인이었다. 당시는 병역비리도 횡행해 병역면제자는 ‘신의 아들’, 단기사병은 ‘사람의 아들’, 현역입대자는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말이 돌았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병역이슈는 폭발력이 더 커졌고, 공정치 못한..

카테고리 없음 2019.08.04

[경향의 눈]폼페이오의 임무

2018.10.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종전선언에 곧 서명하겠노라고 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로 보인다. 북한 외무성이 지난 7월 성명에서 밝혔고, 미국 언론도 확인해 보도했다. 이 말썽 많은 종전선언의 표류 경위는 북·미 협상 2라운드의 향방을 가늠해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짚어봐야 한다. 올 들어 북한은 미국에 몇 가지 선물을 조건 없이 건넸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억류 미국인 3명 송환, 핵·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같은 것들이다. 비슷한 무게의 조치들을 기계적으로 주고받는, 복잡다단한 상호주의가 신뢰 구축은커녕 불신만 키웠던 실패의 경로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지난 25년간 북·미 협상은 으슥한 공터에서 불신 가득한 눈초리로 상대 패거리들..

칼럼 2019.08.04

[여적]아베의 북 위협 부풀리기

2018.08.28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주민들은 지상전(오키나와 제외)은 면했지만, 미군의 공습에 시달려야 했다. 1945년 3월10일 도쿄대공습으로 8만3793명이 죽고, 4만918명이 다쳤으며 도쿄 동부지역 일대가 괴멸됐다. 심야에 도쿄 상공에 진입한 미군 B-29 폭격기 279대가 38만발의 소이탄과 네이팜탄을 퍼부어 목조가옥이 밀집한 ‘시타마치(下町)’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국제사회에선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의 기억이 강렬하지만 도쿄 주민들에게는 도쿄대공습이 더 원초적인 전쟁기억이다. ‘낯선 것이 공중에서 침입하는’ 공습(空襲)은 일본인들에게 근원적인 공포감으로 자리잡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공습 트라우마’를 되살려 낸 건 북한의 미사일이었다. 1998년 8월31일 발사된 대포동 1호 미..

여적 2019.08.04

[여적]‘질풍노도’ 노인세대

2018.08.23 2007년 60대 어부가 남녀 대학생 4명을 잇따라 살해한 사건은 영화 소재가 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69세의 노인이 자신의 배에 탄 여대생을 상대로 성욕을 채우려고 악마로 돌변했다. 고령임에도 어부 특유의 완력으로 바다 환경에 익숙지 않은 청년들을 잔혹하게 유린해 ‘가해자=청년, 피해자=노인’이란 통념을 바꿔놨다. 이듬해 2008년 2월에는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은 채모씨(70)가 국보 1호 숭례문을 불질러 전소시켰다. 2014년 5월 일어난 전남 장성 요양원 화재와 서울 지하철 3호선 도곡역 방화 사건의 범인도 70~80대 노인이었다. 이제 ‘질풍노도’는 청소년이 아니라 노년세대에 붙여야 할 수식어가 돼버린 건가. 노인범죄의 급증세는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최근 5년간(2012~20..

여적 2019.08.04

[여적]지역한정 사원

2018.07.23 최근 일본의 청년세대는 장기불황 속에서 나고 자라 돈과 출세에 관심이 적다는 특징 때문에 ‘사토리(悟り)세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득도한 수도승처럼 부귀영화와 현실의 명리에 관심을 끊은 듯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대학도 가급적 고향에서 가까운 곳을 희망하고 도쿄유학 열망도 예전만 못하다. 리스크가 큰 대도시 유학·취업보다는 고향에 머물며 가족과 지역 커뮤니티라는 안전망에 의존하는 심리가 강해진 것이다. 당연히 해외근무나 전근은 피하고 싶어한다. 일본 산교노리쓰대학이 2017년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입사 뒤 해외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60.4%로 2001년 20.2%에서 크게 늘었다. 회사의 지시라면 전근도 해외근무..

여적 2019.08.04

[여적]일본의 약속

2018.06.28 하시마(端島)는 일본 규슈 나가사키시의 남서쪽에 있는 탄광섬이다. ‘군함도’로도 불리는 이 섬은 한국인에게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상징이다. 국무총리 산하기관인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1943~1945년에 500~800여명의 조선인이 하시마에서 강제노역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7월 개봉된 영화 는 영문 모르고 끌려온 조선인들이 구타와 학대 속에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참상을 묘사했다. 2015년 7월5일 하시마와 야하타제철소 등 규슈와 야마구치 일대의 철강·조선·탄광업 시설 23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강제동원의 아픈 기억이 서린 이 시설들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에 한국이 반발하면서 한·일 ..

여적 2019.08.04

[여적]비단섬

2018.07.01 2002년 9월23일 북한은 전 세계가 깜짝 놀랄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서북쪽 국경도시 신의주 일대를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독자적인 입법·사법·행정권을 부여하겠다는 ‘신의주 프로젝트’다. 초대 행정장관에는 화훼·부동산 사업으로 거부를 쌓은 중국계 양빈(楊斌) 어우야그룹 회장을 내정했다. 양빈은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초대 법무장관을 유럽인으로 임명하고 영어·중국어·한국어를 공용언어로 사용하며 달러를 공식화폐로 하겠다고 밝혔다. 신의주를 ‘북한의 홍콩’으로 만드는 파격적인 구상이었다. 발표 시점도 절묘했다. 일주일 전인 9월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일 정상회담을 하고 조속한 국교 정상화에 합의한다. 다음날인 18일에는 경의선·동해선 ..

여적 2019.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