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47

일본의 격변, 이제 시작이다

도쿄 시내에 있는 집 거실 천정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전등에 선풍기 날개가 꽃받침처럼 붙어 있는 요즘 보기드문 조명장치가 있다. 보통은 거실에서 침식을 하고 있어 자리에 누우면 머리의 위치가 조명장치 쪽으로 향하게 된다.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여진이 계속되면서 잠자리에 들 때마다 조명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잠자리의 위치를 바꾼 적도 있다. 새벽에 발생한 지진으로 집이 들썩거려 잠을 설치기도 하고, 잠자리가 편치 않은 탓인지 가위에 눌린 적도 있다. 초대형 지진이 수도권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10년 전부터 회자돼 왔지만 동일본대지진 이후 부쩍 현실감을 띠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가 가동을 중단시킨 시즈오카현 하마오카(浜岡) 원전이 도카이(東海) 대지진의 진원지에..

칼럼 2012.01.05

‘절망의 회로’ 신·방 겸영

지난달 초순 일본 국회의사당이 있는 도쿄 나가다초(永田町)에서는 일본 전국에서 모여든 청년 농업인들이 며칠째 농성을 벌였다. 농민들은 ‘환태평양경제협정(TPP) 강력 반대’ 등의 글귀가 쓰인 깃발을 펼쳐놓고 중의원(하원) 의원회관 앞 인도에서 추운 가을밤을 지샜다. 하지만 일본의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이들의 농성소식을 다룬 곳은 거의 없었다. 민주당 TPP 반대파의 수장인 야마다 마사히코(山田正彦) 의원이 민주당 지도부를 만나고 나오는 과정을 취재한 화면에서 이들의 농성장면이 잠시 등장한 게 전부였다. 농민들이 왜 쌀쌀한 가을밤을 노상에서 지새야 하는지를 정면에서 응시하려는 언론은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 정도였다. 이들이 벌인 며칠간의 농성은 주요 언론들에 그저 정치권 동향의 자료화면에 불과했다...

칼럼 2011.12.07

미국의 덫에 걸려든 한국과 일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놓고 여야간에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고 있다. 현해탄 건너 일본에서도 사실상 미·일 FTA인 환태평양경제협정(TPP)협상에 참가할 지를 놓고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이 두 협정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세계경제전략이 낳은 쌍둥이나 다름없다. TPP는 당초 브루나이, 싱가폴, 칠레, 뉴질랜드 등 4개국간의 소규모 자유무역협정에서 출발했지만 미국이 뛰어들면서 판이 커졌다. 금융위기 이후 고실업에 신음해온 미국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아시아에서 수출을 늘려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협상에 적극 나섰다. 미국을 제외한 8개 협상 참가국들이 소규모 경제여서 별 실익이 없다고 보고 일본의 참가를 독려한다. 한때 한·미 FTA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버락 오..

칼럼 2011.11.10

용산참사 주역의 황당한 컴백

“부임할 때도 여러 말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습니다.” 일본 오사카(大阪)의 한 교민은 지난 3월 부임한 김석기 오사카 총영사가 불과 8개월만에 그만둔 것에 대해 묻자 “이렇게 금방 그만둔 전례가 없어 다들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김 총영사는 지난달 19일 교민단체장들과 오찬자리에서 사임의 뜻을 전했고, 지난 2일에는 오사카의 호텔에서 나라현 지사와 오사카부 부지사 등 유력인사 400여명을 초청한 이임 리셉션에서 총선 출마의사를 밝혔다. 그런 뒤 외교통상부의 인사발령이 나기도 전에 귀국해버렸다. 임지 이탈인 셈이다. 귀국 다음날인 8일 외교부는 부랴부랴 이임발령을 내기로 했다. 주일대사관 관계자는 “스스로 사표를 낸 것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면서도 “통상 후임을 정한 뒤 물러나는..

칼럼 2011.11.08

100년만에 돌아온 이웃

블로그에 서울과 도쿄의 거리를 비교하는 글을 올렸더니 호된 비판 댓글이 달렸다.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공존토록 하는 ‘분연(分煙)’의 발상이나, 페트병, 알루미늄캔과 일반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도록 돼 있는 일본 거리의 시스템은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는 내용인데, 댓글은 ‘어디 비교할 데가 없어 서울을 도쿄에다 비교하느냐’는 반응이었다. 일본 연수를 다녀온 뒤 주변에 생각없이 일본 칭찬을 늘어놓다 “1년만에 친일파가 됐다”고 한방 먹었던 몇년전 기억도 잠시 떠올랐다. 하지만 공감한다는 댓글이 좀더 많은 걸 보면 일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에 여유가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 한·일 관계에서 조바심을 내는 쪽은 일본이다. 최근 일본 신문에 실린 한 칼럼은 인상적이다. 이 신문의 서울특파원은 “한국에서 일본의 존..

칼럼 2011.10.21

[특파원 칼럼] 노다의 역주행

2001년 취임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두고 미 언론들은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뭐든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과 반대로 하는 부시 정부의 행태를 비꼰 조어다. 그렇게 바뀐 강경 외교정책은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을 낳으며 미국을 수렁에 빠뜨렸다. 취임한지 한달이 채 안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를 평가하기엔 성급한 감이 있지만, 적어도 그의 국정운영은 클린턴의 뒤를 이은 부시를 연상케 한다. 말기에 지지율이 10%대로 곤두박질치며 만신창이가 돼 물러난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강박증이 엿보인다. ‘ABK(Anything but Kan) 정책’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간 전 총리의 정책이나 국정운..

칼럼 2011.09.29

한류는 있고, 한국은 없다

최근 부임한 도쿄의 공관장이 일본의 주요 언론사 중역을 만났다가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본방송은 바빠서 못보는 대신 DVD를 사서 챙겨본다는 말에 일본 내 한류(韓流)팬이 많아진 것을 실감하곤 기분이 으쓱해졌다고 한다. 요즘 일본에선 TV나 서점, 심지어는 편의점에 진열된 상품 포장지에서도 한류의 체취가 느껴진다. TV광고에도 소녀시대와 카라, 동방신기가 나온다. 민방TV의 한국드라마 편성이 과하다며 항의시위가 벌어진 것은 달리보면 한류가 일본 대중문화 속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류붐은 현지 교민은 물론 기자와 같은 체류자들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한 교민사업가는 “공공장소에서 한국말 쓰기도 어려웠던 20여년 전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류 덕..

칼럼 2011.09.14

아톰이 못다한 말

도쿄 도심을 순환하는 JR 야마노테센(山手線)의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 역 플랫폼에서는 우리 귀에도 익은 발차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한국에서 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됐던 의 주제가다. 다카다노바바는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蟲·1928~1989)의 창작사무실이 있는 곳이자, 만화 설정상 아톰이 태어난 지역이다. 역 구내에는 아톰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스탬프가 비치돼 있고, 역사 맞은편에는 데즈카의 만화 주인공들이 그려진 벽화 담장도 있다. 데즈카가 일본의 만화잡지 ‘쇼넨(少年)’에 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6년 뒤인 1951년. 10만마력의 출력을 내는 소형 원자력모터가 탑재된 아톰은 원자력보다 막강하고 안전한 그린에너지가 심장에 장착돼 있어 늘 선한..

칼럼 2011.08.18

[도쿄리포트] 복지, 솜씨가 필요하다

지난 22일 일본 도쿄 나가타초(永田町) 국회의사당의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 간 나오토(管直人) 총리가 민주당의 매니페스토(정권공약)에 대해 “재원 전망이 다소 안이했던 점도 있다. 불충분함이 있었던 데 대해 국민에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자녀에게 월 2만6000엔(35만원)을 주는 ‘아동 수당’ 등 핵심공약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인정한 것이다. 간 총리의 사과발언이 나오자 “결국 사기로 정권을 잡은 셈 아니냐”는 야당의원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일본 정치에서 매니페스토가 갖는 함의는 작지 않다. ‘이념, 수치, 재원 기한 등을 명시한 구체적 선거공약’으로 실현 가능한 대국민 정치약속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그만큼 매니페스토의 잘못을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간 총리는 일본 정치에..

칼럼 2011.07.26

[도쿄리포트] 쇼와시대가 한국에 주는 교훈

한국의 여성 아이돌그룹 카라가 최근 신곡과 함께 선보인 안무가 일본 중년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1980년대 후반 일본 나이트클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빠라빠라 댄스’와 흡사한 카라의 몸동작을 지켜보며 그들은 향수에 젖어든다. 당시는 주가가 자고 나면 치솟고, 넘치는 돈을 감당못해 해외 부동산을 마구 사들이던, 쇼와(昭和)시대(1926~1989년) 막바지이자 일본경제의 황금기였다. 샐러리맨들은 퇴근 뒤 긴자의 호화술집으로 직행하거나 롯본기의 나이트클럽에서 흥청망청 돈을 뿌려댔다.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났지만 일본인들은 여전히 (패전 이후의) 쇼와시대를 그리워 한다. 2005년에 영화 상영을 계기로 시작된 ‘쇼와붐’이 7년째 지속되는 중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매주 토요일 한면에 걸쳐 쇼와시대를 되돌아..

칼럼 2011.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