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47

[칼럼]경제의 밑동을 좀먹는 임대료 착취

한국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중국은 이미 한국을 기술력에서 앞서기 시작했고, 일본은 수십년의 격차를 유지하며 앞서 나가고 있다. 중국이 가공무역 구조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중간재 품목이 대다수인 한국 기업들의 대중국 수출은 격감하고 있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제살 깎아먹기’식 수주경쟁을 벌이다 부실화된 조선산업에서 보듯 한국 기업들의 실적은 악화일로다. 삼성이 3분기에 깜짝 실적을 거뒀지만 환율 효과 덕이 컸고, 주력상품인 스마트폰의 실적은 미미하다. 산업 전반을 둘러보면 한국이 자체적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지경이 됐다. 극히 일부 품목을 제외하곤 미래형 산업에서 한국이 선점한 분야는 찾기 힘들다. 세계 교역이 줄어들고 있는 지금 한국 기업들이 어떤 기술을..

칼럼 2015.10.21

[칼럼]'생활임금'을 받는 일본 알바들

일본 청년들의 취업사정이 궁금해 구인사이트를 살펴보니 최저임금을 웃도는 돈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한국의 ‘생활임금’에 가까운 편이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한국과 달리 47개 광역자치단체별로 정해진다. 지난달 29일 일본 중앙최저임금심의회의 결정에 따라 최저임금은 전국 평균 780엔에서 평균 18엔 오른 798엔이 됐다. 물가가 비싼 도쿄의 경우 888엔에서 907엔(8556엔)으로 오른다. 일본의 ‘마이나비 사이트’에 올라 있는 편의점 알바 구인광고를 보면 토요스(豊洲)에 있는 세븐일레븐의 경우 밤 10시~오전 7시의 밤샘 근무자를 모집하고 있는데 시급 1250엔에 교통비도 준다. 패밀리마트 하라주쿠(原宿)점은 시급이 1050엔~1250엔으로, ‘주 1일 이상, 하루 5시간 이상 근무’가 조..

칼럼 2015.08.04

메르스 사태 속 '원전 추가 건설' 계획

메르스로 온나라가 혼란에 휩싸여 있지만 이런 와중에 국가적 현안들이 졸속 처리될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이달중 확정할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5~2029년)도 그중 하나다. 전력수급계획은 정부가 향후 15년간 전력이 얼마나 필요한지와 어떤 방식으로 공급할지를 담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회의에서 원전을 추가로 2기를 더 건설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지금도 발전소가 남아도는 데다 저성장 국면에서 원전을 추가로 짓겠다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오는 18일 관련 공청회가 열리지만 정부는 참석자가 많을 경우 ‘전력관련 업체, 유관단체·협회 대표자’ 등으로 참석대상을 제한하기로 해 의견수렴이 제대로 될지도 의문이다. 잠시 원전의 문제점들을 살펴보자. 우선 사고 가능성이다. ..

칼럼 2015.06.08

한국리셋론

3년 전쯤 일본 청년들 사이에서 ‘일본리셋론’이 유행한 적이 있다. 당시 민주당 정권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가 넘는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세(부가가치세) 인상을 추진하자 등장한 담론이다. 빚을 갚지 못해 국가재정이 파탄나면 기득권층이 가진 금융자산의 가치가 폭락하고, 그 결과 ‘고착화’된 사회가 유동화(流動化)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금을 올리느니 재정이 파탄나게 내버려두자. 사회가 불안정해지면 기회가 박탈된 청년층에도 좋은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자조(自嘲)가 깔려 있다. 컴퓨터 리셋 버튼을 눌러 껐다 켜듯 일본 사회를 뒤집어 버렸으면 하는 심리는 1990년대 불황기에서 자라나 비정규직을 전전해온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 상당수에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리셋론이 한국에서도 번..

칼럼 2015.05.11

기울어진 협상장

서커스 공연장의 공중그네 밑에 탄력 있고 튼튼한 그물이 깔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곡예사들이 맞은편 그네를 잡으려다 떨어지더라도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곡예의 달인들은 가끔 일부러 떨어졌다가 튀어올라 그네를 다시 잡는 ‘깜짝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곡예사를 보호할 뿐 아니라 재도전도 가능케 하는 탄력이 그물에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군용 담요’ 수준이어서 추락하면 뼈를 다치거나 자칫 죽을 수도 있다. 해고되는 노동자는 이 담요 위로 뛰어내려야 하는 곡예사 신세다. 해고된 뒤 재취업을 하더라도 대체로 최저임금 수준에 장시간 근로의 질 나쁜 일자리를 얻는 게 고작이다. 이래서는 아이 교육비는커녕 집세도 감당하기 힘들다. 자영업은 사정이 더 나쁘다. 이미 2013..

칼럼 2015.04.05

저성장, 고령화 그리고 노면전차

얼마 전 용인에 갔다가 ‘그 유명한’ 용인 경전철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역사를 빠져나온 달랑 1량짜리 전동차가 고가선로를 달리는 모양이 어른 옷을 입은 아이처럼 어색해 보였다. 지난해 4월 개통된 용인 경전철은 하루 16만명이 이용할 것이라는 수요예측 보고서를 근거로 추진됐지만 개통 후 1년간 이용객은 하루 9000명이 고작이다. 경전철 건설로 막대한 적자를 지게 된 용인시는 직원 월급을 깎고 신규 사업을 중단해 버렸다. 용인뿐 아니라 경전철을 건설한 경기 의정부, 경남 김해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대중교통수단을 만들겠다며 대형토목사업을 일으켰다가 후유증을 남기는 사례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형토목사업은 ‘관계자’들에게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우선 단체장은 치적거리가 ..

칼럼 2014.12.08

도시마을이 성공하려면

얼마 전 일본 기자와 만났다가 몇년 전 대기업의 빵집 진출 문제가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의 영역에까지 손을 뻗치다 제동이 걸렸던 일을 설명했더니 그는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우선 일본에선 대기업이 빵을 만들지 않는다. 설사 만들더라도 소비자들이 사먹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네가게에서 몇대째 이어오며 만들어 파는 가게의 빵이 더 맛있기 때문이다.” 그리곤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그 빵은 아마 대기업이 파는 빵보다 비쌀 것이다.” 일본과 한국 간에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지만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는 골목가게들도 그중 하나다. 최근 들어 일본에서도 서비스 분야에서 대기업이 주도하는 프랜차이즈가 늘어나고는 있다. 덮밥집인 요시노야(吉野屋)와 스키야에 돈가스집 체인인 ..

칼럼 2014.10.12

교황이 던진 '탈원전' 메시지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된 가상소설 을 보면 핵발전소 사고가 얼마나 다양한 변수로 촉발될 수 있는지, 또 인간의 대응은 얼마나 무기력할 수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섣달그믐날 밤 일본 동해안에 지어진 원자력발전소의 송전탑을 테러범들이 다이너마이트로 파괴한다. 원전이 긴급정지해 50만 가구에 전력공급이 중단된다. 발전소 측은 비상용 전원으로 원자로 긴급냉각에 나섰지만 배터리 부족으로 중단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비상전원이 쓰나미에 휩쓸리면서 사고를 키웠다는 반성으로 원전 주변 고지대에 외부전원차가 설치됐지만, 아이로니컬하게 눈보라로 고지대에 접근할 수 없어 무용지물이 된다. 정부가 다음날 “원자로 냉각이 중단됐다”고 발표하자 주민들은 앞다퉈 탈출을 시도한다. 일거에 쏟아진 차들로 도로..

칼럼 2014.08.18

[특파원칼럼]벚꽃이 피는 건 잠깐이지만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 벚꽃들로 도쿄 시내 곳곳이 파스텔톤으로 물들었다. 집 근처 센조쿠이케(洗足池) 공원의 벚나무들은 여느 해보다 탐스러운 꽃송이를 뽐내며 상춘객들을 반긴다. 하지만 만개한 벚꽃을 즐길 시간은 불과 며칠뿐이다. ‘꽃놀이’의 여흥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길바닥에 연분홍 자국을 남긴 채 벚꽃들은 스러져간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선운사의 동백꽃을 보며 읊었다는 이 시구는 벚꽃에도 딱 어울린다. 찰나여서 아름다운 건지, 아름다움이 원래 찰나일 뿐인지 구분이 안간다. 도쿄특파원 임기를 시작하던 3년 전만 하더라도 한·일관계는 만개한 벚꽃이었다. 정식근무를 시작한 지 닷새 만에 겪은 3·11 동일본대지진을 취재하느라 경황이 없던 중에도 한국인들이 일본을 동정하고 격려한다는..

칼럼 2014.04.02

[특파원칼럼] 대지진 3년, 절전의 3년

돌이켜보면 3년 전의 도쿄는 어둑한 암회색의 이미지로 뇌리에 남아 있다. 전철은 낮에 실내 조명을 끄고 운행했으며, 역 구내 에스컬레이터에는 ‘통행금지’ 표시판이 놓여 있었다. 사무빌딩들의 엘리베이터도 반 이상 멈췄다. 도쿄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던 도쿄타워도 준공 이후 처음으로 조명 스위치를 내렸고, 주택가의 가로등은 절반 이상 꺼졌다. 수도권 전력 공급의 10%를 담당하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 폭발사고가 나자 일본 정부는 지역별로 번갈아 ‘계획정전’을 실시해 도쿄 일부지역도 전원공급이 끊겼다. 당시 쓰던 휴대폰에는 내가 살던 지역이 언제 정전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력해 둔 문의전화 번호가 아직도 ‘정전’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다. 37년 만에 전력사용제한령이 발동되던 그해 여름은 견디기 힘겨울 정도로 무더웠..

칼럼 2014.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