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109

[여적]지역한정 사원

2018.07.23 최근 일본의 청년세대는 장기불황 속에서 나고 자라 돈과 출세에 관심이 적다는 특징 때문에 ‘사토리(悟り)세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득도한 수도승처럼 부귀영화와 현실의 명리에 관심을 끊은 듯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대학도 가급적 고향에서 가까운 곳을 희망하고 도쿄유학 열망도 예전만 못하다. 리스크가 큰 대도시 유학·취업보다는 고향에 머물며 가족과 지역 커뮤니티라는 안전망에 의존하는 심리가 강해진 것이다. 당연히 해외근무나 전근은 피하고 싶어한다. 일본 산교노리쓰대학이 2017년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입사 뒤 해외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60.4%로 2001년 20.2%에서 크게 늘었다. 회사의 지시라면 전근도 해외근무..

여적 2019.08.04

[여적]일본의 약속

2018.06.28 하시마(端島)는 일본 규슈 나가사키시의 남서쪽에 있는 탄광섬이다. ‘군함도’로도 불리는 이 섬은 한국인에게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상징이다. 국무총리 산하기관인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1943~1945년에 500~800여명의 조선인이 하시마에서 강제노역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7월 개봉된 영화 는 영문 모르고 끌려온 조선인들이 구타와 학대 속에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참상을 묘사했다. 2015년 7월5일 하시마와 야하타제철소 등 규슈와 야마구치 일대의 철강·조선·탄광업 시설 23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강제동원의 아픈 기억이 서린 이 시설들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에 한국이 반발하면서 한·일 ..

여적 2019.08.04

[여적]비단섬

2018.07.01 2002년 9월23일 북한은 전 세계가 깜짝 놀랄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서북쪽 국경도시 신의주 일대를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독자적인 입법·사법·행정권을 부여하겠다는 ‘신의주 프로젝트’다. 초대 행정장관에는 화훼·부동산 사업으로 거부를 쌓은 중국계 양빈(楊斌) 어우야그룹 회장을 내정했다. 양빈은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초대 법무장관을 유럽인으로 임명하고 영어·중국어·한국어를 공용언어로 사용하며 달러를 공식화폐로 하겠다고 밝혔다. 신의주를 ‘북한의 홍콩’으로 만드는 파격적인 구상이었다. 발표 시점도 절묘했다. 일주일 전인 9월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일 정상회담을 하고 조속한 국교 정상화에 합의한다. 다음날인 18일에는 경의선·동해선 ..

여적 2019.08.04

[여적]종로 자전거길

2018.07.05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를 보면 주인공 스즈가 친구의 자전거 뒤에 타고 벚꽃이 흐드러진 도로를 달리는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자전거가 예외 없이 등장할 정도로 생활에 밀착해 있다. 회사나 학교가 1~2㎞ 정도 떨어져 있는 경우 자전거로 통근·통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정주부가 어린아이 둘을 자전거 앞뒤에 태우고 장을 보러 가는 모습도 일상 풍경 중 하나다. 일본에서 자전거는 원칙적으로 차도를 달려야 하지만 보도 중에서도 자전거 통행을 허용하는 곳이 적지 않다. 또 13세 미만이나 70세 이상은 보도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간선도로에는 갓길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 색깔로 구획표시를 하거나 펜스 또는 경계석을 설치해 차량이..

여적 2019.08.04

[여적]케말리즘의 위기

2018.06.25 전성기에는 터키와 발칸반도, 헝가리, 북아프리카, 아라비아반도 남부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아우르던 오스만제국은 19세기 들어 그리스 독립전쟁에서 패하면서 결정적으로 쇠퇴했다. 개혁주의 관료들을 중심으로 근대식 의회 제도와 헌법을 도입하는 탄지마트 개혁을 추진했지만 실패했고,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편에 가담했다가 제국이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실패한 탄지마트 개혁을 계승한 인물이 ‘터키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다. 육군 장교이던 아타튀르크는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5년 갈리폴리 전투에서 25만명의 영국·프랑스 연합군을 패퇴시키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오스만제국을 대신해 터키공화국을 수립하고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

여적 2019.08.03

[여적]외래종의 세계화

2018.06.22 최근 평택항과 부산항에서 붉은불개미가 잇따라 발견돼 검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붉은불개미는 엉덩이에 날카로운 침을 지니고 있다. 이 침에 찔리면 불에 덴 듯한 통증이 일어나고, 심할 경우 현기증과 호흡곤란 증상도 나타난다. 드물게는 사람이 죽기도 한다. 몸은 적갈색, 배는 검붉은색이며 크기는 3~6㎜ 정도다. 붉은불개미는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이 지정한 세계 100대 악성 침입외래종이다. 붉은불개미는 원래 남미가 서식지이지만 미국, 호주, 중국, 대만 등으로 확산됐고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발견됐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9월 부산항 감만부두의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처음 발견됐고, 지난 2월 인천항을 통해 수입된 중국산 고무나무 묘목에서 1마리가 발견됐다. 이어 지난 20일 부산항 허치슨부..

여적 2019.08.03

[여적]김정은의 셀카

2018.06.12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심야 싱가포르에서 발신된 한 장의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후끈 달궜다.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무장관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옹예쿵 전 싱가포르 교육장관이 싱가포르의 식물원 가든스바이더베이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한 ‘셀카’ 사진으로, 발라크리슈난 장관이 찍어 트위터에 올린 것이다. 이날 밤 9시쯤 숙소를 떠난 김정은 위원장은 가든스바이더베이를 거쳐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을 찾았다. 이어 싱가포르의 오페라하우스로 불리는 ‘에스플레네이드’를 둘러본 뒤 2시간 만에 호텔로 돌아갔다. 김 위원장은 야행 도중 시민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사회주의권 밖의 국가를 방문한 것도 드문 일이지만, 시..

여적 2019.08.03

[여적]DMZ 유해발굴

2018.06.07 1996년 10월 초 미국 국방부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지역에서 실종된 미군 사병의 유해를 발굴해 가족에게 인계했다. 휴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북한의 공동조사로 발굴한 첫 유해다. 상등병으로 확인된 유해는 ‘군번줄’로 불리는 인식표와 비상식량, 탄피 등과 함께 발굴됐다. 미 국방부 산하 미군 전쟁포로·실종자확인 합동사령부와 북한 공동 발굴단은 1996년부터 2005년까지 33차례에 걸쳐 미군 유해 229구를 수습해 미국으로 송환했다. 주로 중공군과의 전투가 치열했던 함경남도 장진호와 평안북도 운산 등 격전지에서 발굴됐다. 이 과정에서 함께 발굴된 한국군 카투사 유해 12구도 미국을 통해 한국에 송환됐다. 하지만 ‘단 한 명의 병사도 적진에 내버려두지 않는다(Leave no man be..

여적 2019.08.03

[여적]관광 공해

2018.05.23 중세시대에는 성지순례가, 17세기부터는 유럽 상류층 자제들이 고대 그리스·로마 유적지를 여행하던 ‘그랜드 투어’가 성행했지만 대중적인 관광산업은 철도가 발달하고, 호텔이 등장한 19세기에 본격화됐다. 침례교 전도사이던 영국인 토머스 쿡(1808~1892)은 1841년 7월5일 금주(禁酒)운동 집회에 많은 이들을 참석시키기 위해 전세열차를 기획했다. 참가자를 모집한 뒤 주최자가 인솔하는 ‘패키지 여행’의 효시였다. 관광산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황금기에 비약적 발전을 했다. 1950년 2500만명이던 국제 여행객은 2013년 약 10억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에서도 2008년 1199만명이던 내국인 출국자가 지난해 2649만명으로 불어났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소확행(小確..

여적 2019.08.03

[여적]2018㎜

2018.04.25 2000년과 2007년 열린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무대는 평양 대성구역 임흥동에 위치한 백화원(百花苑) 초대소다. 3층 구조의 3개동이 연결된 연건평 3만3000㎡(1만평) 규모의 백화원 초대소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 주요 인사들의 숙소 겸 회담장으로 사용됐다. 건물 앞에는 여러 개의 분수대가 설치된 인공호수가 있고, 초대소 이름대로 화단에는 100여종의 꽃이 피어 있다. 2000년 6월13일 방북한 김대중 대통령은 파도가 세차게 치는 해금강을 그린 대형 벽화를 배경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한 뒤 응접실로 자리를 옮겨 30분간 환담했다. 사계절의 풍경화가 걸려 있는 접견실에서 김 위원장은 거침없는 어조로 분단현실의..

여적 2019.08.03